대학 입학시험을 치고 나면 해방감이 물밀듯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날부터 점수를 기다리는 기간만큼 기대와 불안이 오가는 시기가 또 있을까?
나도 오래전에 대입 시험을 쳤는데 수학 답안지에 한 칸씩 내려서 마킹을 했다. 마지막 답을 마킹할 자리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여태 한 번도 없던 실수였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1교시가 끝나자 내 대각선 자리에 앉은 늙수그레한 형이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부탁한 것이 마음에 쓰여서였다. 그는 시험 보는 내내 기침을 하고 연필을 두드려,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학교에서는 상상도 하지 않던 일이다.
그런데 나는 좀 극적인 일을 겪었을 뿐 학교로 와보니 친구들은 대부분이 착잡한 표정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나 혼자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처지가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 자리로 와서 따스하게 위로해 주신 것이 감사했다. 나는 결국 그해는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까지 들어 재수를 택했다.
나는 학원에 다니며 참 다양한 형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도 졸업한 형이 “문득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라며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온몸이 근육이고 곳곳에서 막일을 해온 형이 마음을 다잡고 내 곁에서 야자를 했다. 그는 책마다 ‘인간 만세’라고 책배에 굵게 써 놓았다. 고3과 재수할 때 번번이 애인과 열렬히 사귀어 3수까지 한다는 형은 “홀어머니가 외아들인 나 하나 보고 산다”고 했다. 하지만 그해에도 새로 애인을 만들어 사귀었다. 그래도 그해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두 번째 입시에서 1교시 국어 시험을 치르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콘택트렌즈가 벗겨진 것이다.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먼저 내 얼굴과 옷에 렌즈가 붙은 것은 아닌지 살펴본 후에 쪼그려 앉아서 교실 뒤편의 바닥을 살펴보았다. 시간이 없었고 초조했다. 하지만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해하던 낯선 수험생들이 같이 찾아주어서 결국 나는 반짝이는 렌즈를 건네받았다. 참 고마웠다. 그 친구들은 이것을 어떻게 씻어서 눈에 붙일 것인지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클리너와 식염수를 가져왔었다. 첫 시험의 교훈으로 ‘시험장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생길 수 있으니 준비할 건 다 준비해 가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경험이란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겪는 것이다. 우리는 이때 다가온 현실을 부인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좌절한다. 그 후에 수긍하고 모색하며 아프게 성장한다. 나는 쉰 살 때도 이랬고 아마 일흔에도 그럴 것 같다.
우리는 고난도의 시험 문제를 만나지만 그래도 답은 있다. 하지만 살며 부딪히는 문제에는 답이 없는 때가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옳지만 나중에 보면 틀린 경우도 많다. 그 거꾸로인 경우도.
학교 시험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힌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깨닫는 건 공부는 늘 해야 하지만, 시험을 잘 치거나 대학에 꼭 들어가야 잘 사는 건 아니라는 것.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려는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우리가 그저 수험생일 때는 모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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