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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데시벨의 공습··· 밤마다 전쟁 중인 접경지

입력
2024.11.23 16:30
수정
2024.11.23 20: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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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남방송 소음 피해 '심각'
피해 지역 주민 상당수 만성 불면증
귀마개·안대 나눠줄 뿐 근본 대책 없어

수개월 동안 북한의 대남 소음방송에 시달려온 접경지역 주민들의 얼굴에 ‘소리 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들리는 표정’과 ‘보이는 소음’이 상존하는 그들의 모습을 소음계와 함께 기록했다. 사진은 안효철(66)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이장. 안 이장은 그간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여기 사는 죄다. 일찍이 우리 아버지가 이 땅에 지게 끈을 풀어놓고 살기 시작한 죄다."라고 답했다. 그는 현재 4번 뇌신경이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며 양쪽 시력이 모두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다. 강화=하상윤 기자

수개월 동안 북한의 대남 소음방송에 시달려온 접경지역 주민들의 얼굴에 ‘소리 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들리는 표정’과 ‘보이는 소음’이 상존하는 그들의 모습을 소음계와 함께 기록했다. 사진은 안효철(66)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이장. 안 이장은 그간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여기 사는 죄다. 일찍이 우리 아버지가 이 땅에 지게 끈을 풀어놓고 살기 시작한 죄다."라고 답했다. 그는 현재 4번 뇌신경이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며 양쪽 시력이 모두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다. 강화=하상윤 기자


안효철 이장이 강화군 보건소에서 받은 귀마개를 꺼내 보이고 있다. 안 이장은 수개월째 대남 소음 방송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해왔지만, 국가가 마을 주민들에게 마련해준 실질적인 대책은 이 귀마개와 안대가 전부라고 말한다. 강화=하상윤 기자

안효철 이장이 강화군 보건소에서 받은 귀마개를 꺼내 보이고 있다. 안 이장은 수개월째 대남 소음 방송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해왔지만, 국가가 마을 주민들에게 마련해준 실질적인 대책은 이 귀마개와 안대가 전부라고 말한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채갑수(68)씨는 지난 7월 대남방송이 시작된 이후로 단 하루도 깊은 잠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채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깨어나 해가 뜬 뒤에도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면서 "이렇게 치매가 찾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채갑수(68)씨는 지난 7월 대남방송이 시작된 이후로 단 하루도 깊은 잠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채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깨어나 해가 뜬 뒤에도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면서 "이렇게 치매가 찾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목숨만 붙어 있다고 사는 게 아니다. 북한 대남 방송이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기세로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지독한 고문에 가까운 이 소음 때문에 단 하루도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밤이 돌아오는 게 두렵다.”

지난 20일 인천 강화군 당산리 마을에서 만난 주민 채갑수(68)씨는 북녘을 가리키며 ‘가슴이 답답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집은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대성면 해창리 인근 대남방송 확성기로부터 약 1.8㎞ 떨어져 있다. 맑은 날엔 맨눈으로 북한군 초소와 확성기가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채씨를 비롯한 당산리 일대 주민들은 수개월째 24시간 지속되는 이 소음 방송이 일상을 앗아갔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마을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대성면 전경. 맑은 날에는 맨눈으로도 대남방송 확성기와 북한군 초소를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당산리 마을에서 800㎜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촬영한 북한 대남방송 확성기 모습이다. 강화=하상윤 기자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마을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대성면 전경. 맑은 날에는 맨눈으로도 대남방송 확성기와 북한군 초소를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당산리 마을에서 800㎜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촬영한 북한 대남방송 확성기 모습이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조경자(78)씨는 "불면증이 너무 심해져 귀마개, 안대 다 써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라며 “나는 노인네라 상관없다지만, 이런 세상에 살아갈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조경자(78)씨는 "불면증이 너무 심해져 귀마개, 안대 다 써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라며 “나는 노인네라 상관없다지만, 이런 세상에 살아갈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조경자(78)씨가 가방에서 꺼내 보인 수면제.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조경자(78)씨가 가방에서 꺼내 보인 수면제. 강화=하상윤 기자


“7월 이후로 약 안 먹으면 잠을 못 잔다. 잠들지 못한 채 그 험한 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의사에게 애원하다시피 해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그마저도 (수면제) 한 번에 다 털어먹고 죽을까봐 걱정해서인지 열흘치밖에 안 주더라.”

65년째 당산리에 거주 중인 조경자(78)씨는 ‘취침 전’이라고 표시된 수면제 봉지들을 꺼내 보이며 참혹한 현실을 증언했다. 조씨는 “종일 밭에서 그 소리 들으면서 일하다 집에 오면 ‘욍욍욍욍’ 소리가 환청이 돼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라며 “나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상당수가 두통약과 수면제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김수자(76)씨도 “평소엔 파란 약(수면제) 반쪽을 먹고 소음이 심할 때는 한 알을 먹는다”라며 불면증으로 인한 괴로움을 하소연했다. 폐암 판정을 받은 친언니와 투병 생활을 위해 14년 전 이곳으로 이주한 김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언니의 병세가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당산리 주민 김수자(76)씨는 소음 방송이 정점에 이르던 지난여름을 떠올리며 “창문을 열자니 소리가 괴롭고, 창문을 닫자니 더위가 괴롭고, 에어컨을 계속 틀자니 냉방병이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조씨는 "함께 지내는 친언니의 병세(폐암)가 스트레스로 인해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김수자(76)씨는 소음 방송이 정점에 이르던 지난여름을 떠올리며 “창문을 열자니 소리가 괴롭고, 창문을 닫자니 더위가 괴롭고, 에어컨을 계속 틀자니 냉방병이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조씨는 "함께 지내는 친언니의 병세(폐암)가 스트레스로 인해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김수자(76)씨 수개월째 복용 중인 수면제 낱알을 꺼내 보이고 있다. 그는 “평소엔 파란 약(수면제) 반쪽을 먹고 소음이 심할 때는 한 알을 먹는다” 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김수자(76)씨 수개월째 복용 중인 수면제 낱알을 꺼내 보이고 있다. 그는 “평소엔 파란 약(수면제) 반쪽을 먹고 소음이 심할 때는 한 알을 먹는다” 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실제 지난 12일부터 일주일에 걸쳐 심야를 중심으로 소음 정도를 모니터링한 결과, 평균 오후 11시를 기점으로 소음도가 상승하며 오전 1시부터 4~5시간 동안 최고조(70dB 전후)에 이르렀다. 70dB은 가까이 있는 청소기 소리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그런데 현재 북측이 송출하는 대남방송에 대해 접경지역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배경에는 소음의 크기보다 종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예전 대남 방송이 체제를 홍보하는 말과 노래였다면, 현재의 대남방송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괴기한 소음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귀신 비명, 회오리바람 소리, 까마귀 울음소리, 늑대 하울링, 광대 웃음소리, 팩스 수신음, 로켓 발사음, 유리·금속 마찰음 등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할 만한 소음이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5대째 당산리에 살고 있는 안순섭(69)씨는 “어렸을 적에는 밭에서 일하다가 북한 노래가 멀리서 들려오면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했었다”라며 “요즘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소통은 다 끊어지고 증오만 남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당산리 주민 안순섭(69)씨는 "정부가 이 사태를 조율하거나 해결할 의지가 있는 지 알고 싶다"면서 "대화도 협의도 없이 양쪽이 힘겨루기 하는 동안 중간에 낀 주민들의 삶은 바닥에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싫으면 떠나라'고 말하는 인터넷 기사 악성 댓글에 대해 "5대에 걸쳐 이곳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다"라며 "뿌리를 자르고 떠나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안순섭(69)씨는 "정부가 이 사태를 조율하거나 해결할 의지가 있는 지 알고 싶다"면서 "대화도 협의도 없이 양쪽이 힘겨루기 하는 동안 중간에 낀 주민들의 삶은 바닥에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싫으면 떠나라'고 말하는 인터넷 기사 악성 댓글에 대해 "5대에 걸쳐 이곳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다"라며 "뿌리를 자르고 떠나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한 달이라도, 그게 어렵다면 단 일주일만이라도 우리 군이 먼저 대북 방송을 멈추는 걸 고려해달라.”

당산리 주민 김옥순(65)씨는 “탈북단체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 대북방송 재개와 대남방송 재개는 별개가 아니라 서로 물고 물린 것”이라며 “이렇게 기약 없이 줄다리기하다가 더 큰일이 생기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주민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귀마개와 방음창이 아니라 외교적 해법이다”라고 강조했다.

당산리 주민 김옥순(65)씨가 손주들을 등교시킨 직후 카메라 앞에 섰다. 김씨는 딸 안미희(37)씨 가족과 9년째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소음 스트레스를 경험한 뒤로 딸네에게 이사를 권하고 있다. 김씨는 "할머니, 할아버지만 이 지옥에 두고 우리끼리 떠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손주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3대가 함께 집짓고 사는 천국 같았던 일상이 지옥으로 변했음을 실감한다"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김옥순(65)씨가 손주들을 등교시킨 직후 카메라 앞에 섰다. 김씨는 딸 안미희(37)씨 가족과 9년째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소음 스트레스를 경험한 뒤로 딸네에게 이사를 권하고 있다. 김씨는 "할머니, 할아버지만 이 지옥에 두고 우리끼리 떠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손주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3대가 함께 집짓고 사는 천국 같았던 일상이 지옥으로 변했음을 실감한다"라고 말했다. 강화=하상윤 기자


당산리 주민 김옥순(65)씨 손녀 문서영(8)양이 그린 그림이다. 철책 너머 대남방송 확성기와 맞은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아래 사진은 문양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안미희씨 제공

당산리 주민 김옥순(65)씨 손녀 문서영(8)양이 그린 그림이다. 철책 너머 대남방송 확성기와 맞은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아래 사진은 문양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안미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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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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