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석상서 윤석열 정부 대신 '우리 정부' 지칭
'윤석열 정부 성공' 언론사에 정정 요청하기도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생각할 때 공정과 상식, 정의가 너무 분명하다. (새 정부 명칭은) 윤석열 정부로 간다는 게 많은 인수위원들의 생각이다. 윤석열의 상징성, 우리 정부의 방향에 대해 윤석열 외에 어떤 단어가 더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2022년 4월 장제원 당시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
정부의 명칭은 국정의 기조, 철학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 출범 당시에도 여론의 관심이 모였습니다. 장 전 비서실장은 '윤석열 정부'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애초 '국민 통합 정부', '우리 정부' 등도 거론됐지만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과 같았던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상 '고유명사'가 된 셈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여권 인사들이 즐겨 쓰는, 자긍심까지 담긴 '윤석열 정부'라는 표현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유독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대표는 대신 '우리 정부'라는 표현으로 이번 정부를 지칭합니다. 지난 11일 열린 국민의힘·윤석열 정부 합동 전반기 국정성과 보고 및 향후 과제 토론회를 보겠습니다. 윤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돈 것을 기념해 열린 행사인데, 한 대표는 2,749자 분량 발언 중 '우리 윤석열 정부'라는 표현을 한 차례만 사용합니다. 반면 '우리 정부'라는 표현은 5번 언급했습니다.
침소봉대 아니냐고요. 국민의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한 대표의 모든 발언을 분석해봤습니다. 지난해 12월 26일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이래 387번의 공개석상 발언 중 '윤석열 정부'라는 표현은 단 19차례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기간 '우리 정부'라는 표현을 166회, '저희 정부'라는 표현을 12회 사용한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현격합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겠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해 12월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해 4월 11일 총선 참패 후 물러날 때까지 각종 선거유세를 포함한 270번의 공개석상에서 '윤석열 정부'란 표현을 12차례만 사용합니다. '우리 정부'는 119회, '문재인 정부'는 61회에 달합니다. 당시 '투톱'이었던 윤재옥 전 원내대표와 비교하면 한 대표의 '윤석열 정부' 기피는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윤 전 원내대표는 87번의 공개석상 발언 중 '윤석열 정부'를 44회 언급한 반면, '우리 정부'는 4번 썼습니다. 총선 당시 정권심판론이 힘을 받았다는 점을 본다면 한 대표가 윤 대통령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회피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117회의 공개석상 발언 중 '윤석열 정부'는 7회, 우리 정부는 47회 언급합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같은 기간 120회 공개석상 발언 중 '윤석열 정부'란 표현을 24회, '우리 정부'란 표현을 11회 썼습니다.
단순히 말버릇으로 보기 힘든 정황도 있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달 6일 종로의 한 중식당에서 친한동훈계 의원들과 만찬을 가졌습니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소 등을 주문하며 당정 갈등이 고조될 때로, 친한계의 세를 과시하는 성격이 짙었습니다. 한 매체가 참석자 전언을 토대로 '한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자고 했다'고 보도하자, 한 대표 측이 '한 대표는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며 정정을 요구했단 겁니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은 여권 인사들의 흔한 레퍼토리인데, 굳이 언론사에 정정을 요구할 일인지 의문이 드는 일입니다.
"'우리 정부' 표현은 국정 운영의 공동주체 강조" 해석
그렇다면 한 대표는 이 표현을 왜 피하는 걸까요. 친한계 핵심 인사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해당 인사는 "우리 정부라는 표현으로 친근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보다는 우리 정부의 어감이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표현이란 겁니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의 해석은 사뭇 다릅니다. 먼저 한 대표에게 짙게 드리워진 윤 대통령의 그림자를 들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인연은 검찰 시절부터 20여년 이어졌다"며 "차기 대선을 노리는 한 대표로선 '누군가의 부하'라는 꼬리표는 달갑잖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하는 한 대표의 정치적 요구는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닌 정치 파트너로서 인정해달라는 제스처"라고 해석했습니다.
수평적 당정 관계의 표현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 6월 전당대회 출마 선언 때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쇄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실 주도의 당정 관계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만큼, 이를 고치겠단 겁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 정부'라는 한 대표의 표현엔 국민의힘이 국정 운영의 공동 주체라는 인식이 담긴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