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싱글맘' 피해 낳는 불법대출]
요즘 대출 트렌드는 비대면... 협박도 온라인
군 기밀, 성착취물 담보 잡고 대출한 사례도
지인 가족사진 SNS 올려놓고 협박 일삼아
"13세 아동 성추행. 합의금 빌리고 잠적함."
올해 9월 김모(29)씨는 지인이 언급된 수상한 문자를 받았다. 스팸이라 생각해 넘기려 했지만, 절친한 'A'의 행적이 언급돼 있어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A씨가 성추행 합의금을 빌리고선 갚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며칠간 매일 한두 건씩 전송됐다. 반신반의하는 김씨 마음을 읽은 듯, 문자엔 '직접 확인해 보라'며 인스타그램 계정이 언급돼 있었다. 해당 계정엔 정말로 A씨가 차용증을 들고 "돈을 빌렸다"고 이야기하는 영상이 있었다.
문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가 화장실 몰카를 제작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욕설이 담긴 문자가 수십 통 쏟아졌다. 심지어 'A씨에게 연락하지 않으면 당신 개인정보를 판매하겠다'는 협박 문자도 왔다.
진화하는 불법사채 추심법
불법 사채업자들의 대출 유도 수법과 불법 추심이 갈수록 악랄하게 진화하고 있다. 접근이 쉬운 채팅방을 통해 돈을 빌려준다며 사람들을 끌어모은 뒤, 나중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지인을 통해 허위 정보와 불법 촬영물을 퍼트려 추심하는 식이다. 과거 폭력배들을 동원해 현장에서 겁박하던 불법 추심과 달리, 요즘은 이렇게 '비대면'으로 범행이 이뤄져 단속도 더 어려워졌다.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사망한 30대 싱글맘 사례를 막기 위해, 진화한 불법추심 수법에 발맞춘 대응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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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금융 피해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신고 현황은 2020년 7,300여 건에서 지난해 1만2,800여 건으로 75% 늘었다. 이렇게 늘어난 피해자의 대다수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발을 들였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전체 불법사금융 신청자 90%가 포털 검색을 통해, 7%가 SNS를 통해 대출받고 있다.
최근 불법 대출 트렌드는 '비대면'이다. ①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 광고를 보고 대출을 문의하면, 업체는 인터넷주소(URL)를 보내 채팅방 대화를 유도한다. ②담보 대신 등본·지인 연락처 등을 받고, ③신용도를 올려야 한다며 특정 금액을 빌려준 뒤 곧바로 상환을 요구한다. 일주일 간격으로 30만 원 대출 50만 원 상환, 70만 원 대출 120만 원 상환 등을 반복하는 식이다. 이 과정이 몇 차례 이어지면, 빚은 순식간에 불어나 법정 이자율 20%를 초과해 최대 연리 수만 %까지 이율이 치솟는다.
온라인에서 업체끼리 커넥션을 형성해 대출을 유도하기도 한다. 피해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다른 업체를 소개하며 우선 이자를 갚으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온라인 대부중개사이트에서 합법 대부업체에 연락했지만 다른 번호로 답장이 와 불법 업체에서 대출받는 경우도 있다. 금감원은 등록 대부업체가 고객 정보를 불법 업체에 제공·판매하는 것으로 추정, 사이트 실태 점검에 나섰다.
지인들도 추심에 고통
추심 방법도 진화했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한 적 있다'거나 '낙태를 위해 돈을 빌렸다'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유포하겠다며 압박하고, 피해자가 사전에 제공한 정보를 퍼트리겠다며 협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정보를 넘어 '군 기밀'이 담보물로 취급된 사례도 있다. 지난달 구속 기소된 한 사채업자들은 군 간부 10여 명에게 돈을 빌려주며 3급 군사 비밀인 암구호 등을 담보로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들은 "이자를 내지 않으면 암구호 유출을 부대에 알리겠다"며 협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 추심은 성 착취로 발전하기도 한다. 경찰이 최근 검거한 불법 대부업 조직 총책 등 6명은 피해자 2,400여 명에게 약 1만507%의 연이율을 요구하며 돈을 빌려줬는데, 이들은 담보물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나체 사진 및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자를 제때 납입하지 못하자 사진과 영상을 성인사이트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자 지인 정보가 무차별 공유되다 보니, 대출과 무관한 피해자도 늘고 있다. 불법 사채 피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의 한 작성자는 "가족 중 한 명이 사채를 써 문자가 쉬지 않고 온다"며 "추심에 협조하지 않으면 제 사진과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하루 종일 전화를 걸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다른 작성자는 "가정폭력으로 접근 금지를 신청한 친척이 돈을 빌려 피해를 입었다"며 "인스타그램에 우리 가족 사진까지 올라와 불안에 떨고 있다"고 호소했다.
"불법 대부 포털 광고 규제해야"
전문가들은 관계당국의 일관된 예방지침과 실시간 모니터링을 주문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법 대부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며 "수사기관과 금융당국이 나서 불법 업체들의 페이스북, 포털 광고 등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록 금감원 불법사금융대응팀장은 "채팅방을 통해 대부 계약을 체결해선 안 되고, 불가피하게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의 번호와 이름, 주소를 확보하고 계약 내용은 메일로 받아야 한다"면서 "불법 추심을 당했다면 신속하게 증거를 수집해 금감원 등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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