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 다시본다, 고전2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도시와 개들'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88)는 201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그의 소설 ‘도시와 개들’(1963)은 출세작이면서 ‘남미 문학’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유럽과 미국 작가 작품이 중심이었던 세계 문학계에 남미 작가들의 작품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작품은 출간 전 비블리오테카 브레베상을 받았고 출간되자마자 스페인 비평상을 수상했다.
유럽의 고전도 마찬가지지만 자연과 정치사회적 환경이 낯선 남미 작품은 해설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 이 작품이 더욱 그런 것은 서술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데다가 의식의 흐름 기법까지 사용됐다. 맥락을 분명히 이해하지 않고는 텍스트를 제대로 해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긴장이 잘 유지될 뿐 아니라 쉽게 읽힌다. 그런 점에서 놀라운 작품이다.
범인 고발한 학생은 누가 죽였을까
소설은 2부, 각 8장으로 구성돼 있고 각 부에는 제사(題詞·책 서두에 나오는 책과 관련한 시 등의 글)가 있다. 1부의 제사는 사르트르의 희곡 '킨'(Kean·1953)에서 인용한 것으로 아이러니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연히 소설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마지막 문장이 전체를 아우른다. ‘우리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여서 연기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입장과 맥락에 따른 역할에 맞추어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집단에 속하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겁쟁이가 영웅이 되거나 사악함을 숨기려다 성인이 되기도 하며 우연히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2부의 제사는 폴 니장(1905~1940)의 소설, ‘아덴 아라비아’(1931)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스무 살 인생이 아름다운 시기라고 말하지 못하게 할 작정이다.’ 성장기 남성의 통과의례가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힘겨운 과정인지 보여주겠다는 의미이다.
소설의 줄거리에는 군사학교 학생들 이면의 삶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엄격한 규정에 의해 통제된다고 하지만 혈기 방장한 10대 남자아이들이 고분고분 따를 리 없다. 폭력적인 억압에 맞서 규범을 파괴하고 금지 항목을 자행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와 질서를 구축한다. 이야기는 ‘왕초 그룹’이 한밤중에 ‘화학 시험지’를 훔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멤버들이 모여서 누가 훔치러 갈 것인지 주사위를 던져 결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 시험지 답안을 미리 준비해 다른 학생들에게 ‘판매’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시험을 치르는 도중에 ‘답’을 전달하다가 감독관에게 들키고 만다. 지휘관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자 그 반 학생 전체를 외출 금지시킨다. 외출 금지를 견디지 못한 한 학생이 ‘시험지 도난 사건’의 범인을 꼰지른다. 훔친 학생은 퇴학당하고 그룹의 리더 격인 ‘재규어’는 고자질한 학생을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맹세한다.
그가 고자질한 학생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제는 고자질한 학생(별명은 ‘노예’였다)이 야전 훈련 도중에 총상을 당해 중상을 입었는데 결국 사망한다. 그런데 그 죽은 학생과 비교적 친한 관계였던 ‘시인’은 ‘노예’의 뒤에 ‘재규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가 살해했다고 확신한다.
‘시인’은 공정한 지휘관으로 믿고 있던 감보아 중위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재규어’가 ‘노예’를 살해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그가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모두 이해한 감보아 중위는 상관에게 보고하면서, 상부에서 자세히 조사해 사실이 규명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직속상관뿐만 아니라 최고 책임자인 대령까지도 이 사건을 단순한 총기 사고로 처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학생이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하게 되면 지휘관의 책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경력에 큰 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규정대로 밀어붙이던 감보아 중위는 좌천되고, 고발자였던 ‘시인’도 약점이 잡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라고 끝까지 부인하던 ‘재규어’가 감보아 중위가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에서 ‘내가 죽였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감보아는 이미 늦었다며 재규어가 전해 준 쪽지를 찢어버린다.
이 작품은 사건의 전부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양한 관점에서 묘사되고 서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사건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의 ‘살인’과 관련된 해석 때문에 묘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가의 설명이다.
“나는 멕시코에 갔다. 유명한 갈리마르 출판사의 문학 위원회 리더인 대단한 프랑스 비평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유네스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내 소설을 읽었다면서 등장인물 가운데 ‘재규어’라는 캐릭터가 매우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유는 그가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떠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재규어가 살해한 게 맞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은 자신의 소설을 잘못 알고 있군요. 재규어는 그룹의 리더십을 잃는 것이 범죄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비극이었을 겁니다.’ 그의 해석이 나를 설득시켰다. 비록 내가 소설을 쓸 당시에는 재규어가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인간의 복잡성 탐구했으나 여성 묘사는 진부
작품의 줄거리를 단순화해서 소개했지만 그 디테일은 작가의 조국 페루가 처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깊이 파고든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되며 이는 1950년대 페루의 수도 리마 사회의 축소판을 반영한다. 인종적 편견과 증오(백인, 인디오,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 촐로, 흑인 간의 갈등), 지역적 갈등(해안·산악·정글 지역 사람들 간의 대립), 그리고 사회경제적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잔혹하고 반민주적인 군국주의에 대한 작가의 반감도 강하게 드러나 있다. 거친 언어와 블랙 유머를 통해 군사문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강렬하게 담아낸 것이다. 그랬으니 소설의 배경이 된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학교에서는 출간된 책을 모아 불사르기도 했을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서로 지정했는데, 그것은 페루의 군사문화에 대한 정치사회적 비판뿐 아니라 동성애나 강간, 수간 장면들도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굳이 그런 내용을 삽입한 것은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이 인간의 욕망과 행동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폭력적인 억압 구조가 만들어내는 금기 파괴 행동과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실망스러운 점은 여성에 대한 관점이다. 작품의 혁신적이고 세련된 서술 기법에 비하면 여성들은 지나칠 정도로 순진무구하다. 군사학교의 폭력적 현실에 대조되는 이상적 피난처로만 묘사되며, 독립적인 인격을 보여주지 못한다. 군사학교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는 성매매 여성 역시 진부하기 짝이 없다.
작품의 제목인 ‘도시와 개들’에서 도시는 군사학교가 있는 리마를 가리키고 개들은 그곳 신입생들을 지칭한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을 처음에는 ‘영웅의 거처’로 하려다가 ‘사기꾼들’로 바꾸었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아 비평가이자 친구인 호세 미겔 오비에도와 의논했다. 그가 내놓은 제목 가운데 하나가 ‘도시와 개들’이었고, 요사는 곧바로 그 제목으로 정했다. 영어판은 이도 저도 아닌 ‘영웅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개들보다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고 포장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작가는 반대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