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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 피와 영광

입력
2024.11.27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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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장 레옹 제롬, '폴리케 베르소', 1872년, 피닉스미술관, 미국 애리조나

장 레옹 제롬, '폴리케 베르소', 1872년, 피닉스미술관, 미국 애리조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글래디에이터 2’가 화제다. 노예 검투사로 몰락한 로마의 명장 막시무스가 콜로세움에서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지 20년 후, 그의 아들 루시우스가 로마 제국의 폭군 카라칼라와 게타, 악당 마크리누스에 대항해 승리하고 로마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해피엔딩이다. 전편인 ‘글래디에이터 1’에 영감을 준 그림이 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이자 조각가인 장 레옹 제롬(Jean-Léon Gérôme)이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를 묘사한 ‘폴리케 베르소’다. 당대 아카데믹 미술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인 장 레옹 제롬은 역사, 그리스 신화, 오리엔탈리즘을 주제로 작업했다. 아카데믹 미술은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가 제시한 엄격한 규범과 전통에 따른 예술 양식이다. 제목인 ‘폴리케 베르소(Pollice Verso)는 라틴어로 '허락하다(pollice)'와 '뒤집다(verso)'를 합친 말이다. 승리한 검투사에게 패자를 죽이라는 신호로 관중이 엄지를 아래로 내리는 제스처를 의미한다. 사실 엄지손가락을 내리는 제스처가 과연 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제롬의 그림은 아래로 꺾은 엄지손가락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고착화시켰다.

제롬의 뛰어난 테크닉과 예술적 비전은 우리를 오래전 역사의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화가는 고대 로마 검투사 경기의 클라이맥스를 포착하고 있다. 우리의 시선은 관중의 열광으로 가득 찬 웅장한 스타디움 한가운데에 있는 검투사에게 꽂힌다. 관중은 흥분과 기대 속에서 두 검투사 간의 치열한 전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검투사의 투구는 햇빛에 반짝거리고 검은 불길하게 빛난다.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 역시 그림 속 사람들과 함께 이 순간의 긴장감에 몰입하게 된다.

검투사들에 대한 정보는 고대 문헌, 돌에 새겨진 조각, 비문, 로마 전역에 있었던 원형극장의 잔재, 그리고 화산재에 파묻혀 수천 년간 시간이 멈춘 고대 도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알려졌다. 폼페이의 원형극장 안뜰에 위치한 검투사들의 막사에서는 갑옷과 유골이 발견되었다. 유골 중에는 팔찌, 반지, 에메랄드 목걸이로 장식한 여성 검투사도 있었다. 1993년에는, 고대 로마 식민지 에페소스(현 튀르키예 셀추크)에서 검투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와 투구, 방패,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 등이 발굴됨으로써 그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수집되었다. 고대 로마의 주요 이미지 중 하나인 검투사의 삶과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에페소스의 검투사 유골을 연구한 법의학자들은 검투사가 어떻게 살았고 죽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아냈다. 발견된 시신 68구 중 66구는 20대 성인 남성이었다. 머리 상처와 팔 골절이 적절히 치료되었거나, 전문적인 다리 절단 수술을 한 유골도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살아 있을 때 훌륭한 의학적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처를 입은 흔적이나 사망의 원인이 된 부상이 남아 있는 검투사들의 뼈도 발견되었다. 그중에는 균일한 간격으로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두개골이 있었는데, 삼지창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검투사들은 로마, 폼페이 등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100여 개의 검투사 양성소(ludus)에서 전직 검투사 출신 트레이너인 라니스타(Lanista)에게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현대의 운동선수들처럼 체계적인 훈련과 엄격한 식단으로 관리되었다. 정치가들은 종종 정치적 경력을 쌓기 위해 검투사 경기를 열어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이들은 라니스타에게 검투사 경기를 의뢰하고 필요한 자금을 후원했다.

대부분의 검투사는 노예나 전쟁 포로, 죄수였지만, 자유인들도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훈련된 검투사는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귀중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소유주는 사망률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경기의 후원자는 종종 관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패자의 생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값비싼 검투사를 죽이려면, 소유주에게 행사비의 10배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흔하진 않았다. 검투사 10명 중 9명은 살아남았다.

이들은 로마의 최하류층으로 멸시받았지만, 최고의 검투사들은 부와 명예를 얻은 고대의 슈퍼스타였다. 야성적인 남성성을 내뿜는 건장한 근육질 검투사는 여성들의 열렬한 흠모를 받는 섹스 심벌이기도 했다. 검투사들은 시합에 앞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을 행진했다. 그들은 황제 앞에 다 같이 서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곧 죽을 우리는 황제께 경의를 표합니다!"

경기장에서는 검투사 경기를 비롯한 온갖 폭력적인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로마 검투사들은 매일매일 죽음에 직면하는 극도로 잔인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검투사끼리의 전투뿐 아니라 사자, 호랑이, 불곰, 코끼리, 하마, 코뿔소 같은 맹수와도 싸웠다. 종종 전쟁 포로, 범죄자, 기독교 신도들이 맹수에게 먹이로 던져지는 참혹한 광경도 기획되었다. 가장 장관을 이루는 오락은 '나우마키아(naumachia)’라는 대규모 모의해전이었다. 물을 채운 콜로세움이나 특별히 건설된 인공 호수에서 진행됐다. 군함에 탄 전쟁 포로나 죄수들이 한편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싸우는 잔혹한 스펙터클이었다. 이런 것들은 확실히 고대 로마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로마인은 자신들이 문명화되고 고결한 미덕을 가진 시민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존엄성, 명예, 절제를 의미하는 디그니타스(Dignitas)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 또한, 로마는 예술, 건축, 공학, 문학에서 수준 높은 발전을 이룩했다. 그들의 믿음처럼 로마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도약한 사회였을까? 로마인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폭력과 야만은 로마 정체성의 일부였다. 웅장한 공공 기념물 및 개인 저택의 벽과 바닥, 무덤과 석관에는 온통 폭력적인 신화와 전투, 정복 장면이 가득하다. 로마 문명은 무자비한 전쟁과 살육, 식민지 수탈과 폭력 위에 세워졌다.

고대 로마의 많은 것은 오늘날 우리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잔혹한 검투사 경기를 안 좋아할까? 만약 칼과 청동 갑옷으로 무장한 채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챔피언십, 우승자에게 수백억 원의 상금이 걸린 현대판 글래디에이터 쇼가 벌어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 싸움을 구경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할 것이다.

수천 년 전 로마인들이 원형 경기장을 짓고 검투사 게임을 보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듯이, ‘글래디에이터 2’ 제작에도 약 2억 5,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리얼리티쇼와 가상현실이라는 점만 다를 뿐, 현대인도 고대인처럼 검투사가 연기하는 스펙터클한 장면에 열광하고 있다. 우리는 고대인과 다르지 않은, 바로 그 사람들이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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