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적 초대형 항공사 탄생 본격화
2년간 합병 절차, 공정위 요건 충족 등 과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승인 절차가 최대 고비를 넘으면서 세계 10위권 수준의 한국 국적 초대형(메가) 항공사 탄생이 눈앞에 왔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취임한 이듬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획을 밝힌 지 4년 만의 결실이다.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 선행 조건을 모두 채워 심사를 끝마쳤다는 사실을 발표했다고 28일 밝혔다.
앞서 EC는 2월 양사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 여객 부문은 유럽 4개 노선(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의 일부 슬롯(시간당 허용되는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에 넘겼다. 대한항공은 티웨이항공 측에 항공기, 승무원, 정비 등도 지원했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는 에어인천을 매수자로 선정해 승인 조건을 충족했다.
이로써 주요 14개국 중 미국을 뺀 13개 나라가 두 회사의 합병을 허락한 셈이다. 대한항공은 마지막으로 남은 미국 법무부(DOJ)에도 EC의 승인 내용을 보고했다고 전했다. DOJ는 심사 결과를 따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독과점 소송을 내지 않으면 합병 승인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으로 대한항공은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12월 양사 합병을 위한 아시아나항공 신주 인수도 DOJ 등 주요 14개 나라 경쟁 당국에 알릴 예정이다.
대한항공은 DOJ의 양사 통합에 따른 경쟁 제한 우려에 미주 5개 여객노선(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LA, 시애틀)의 슬롯 일부도 국내 LCC인 에어프레미아에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해외 경쟁 당국과 협의 내용은 밝힐 수 없다"는 게 대한항공의 입장이다.
조원태의 꿈, 4년 만에...
2019년 4월 조 회장이 취임한 뒤 대한항공은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을 공시한 뒤 국내외 경쟁 당국에서 합병 승인 절차를 진행해왔다.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2019년 4월 매각이 결정된 지 5년 7개월 만에 짝을 찾은 셈이다. 그는 2021년 신년사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은 양사 임직원에게 주어진 운명이자 시대적 사명이라고 믿는다"며 "항공사 통합으로 글로벌 항공 역사에 길이 남을 우리만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같이 오랜 기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매달린 데는 이유가 있다.
업계에서는 양사 통합 과정이 끝나면 전 세계 10위에 가까운 국적 메가 항공사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세계 항공운송 통계(WATS)에 따르면 2019년 국제선 유상 여객 킬로미터(Revenue Passenger–Kilometres) 기준 대한항공은 18위, 아시아나항공은 32위다. 양사 실적을 합치면 11위가 된다는 게 대한항공의 계산이다.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이뤄냄으로써 브랜드 가치, 고객 신뢰도, 기재·부품 등의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조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아시아나항공과의 인수·합병은 경쟁력 있는 기재와 숙련된 항공 전문가를 하나로 모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안"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전세계 유력 항공사도 기업결합으로 몸집을 불리며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세계 1위 항공사인 미국 델타항공은 2007년 파산 졸업 직후인 2008년 미국 5위 노스웨스트항공을 인수하면서 성장했다. 세계 2위로 태평양 노선에 강점이 있던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2010년 미국 4위로 대서양 노선에 강한 콘티넨탈항공을 인수해 시너지를 냈다. 3위 미국 아메리칸항공도 2013년 미국 5위 항공사였던 US에어웨이스와 합병한 직후 미국 최대 항공사(매출 기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12월 실시할 예정인 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확보할 예정이다. 이후 조직, 브랜드 통합 절차를 2년 동안 진행할 계획이다. 상당 기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 기간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부산·에어서울 등 국내 LCC 세 곳도 하나로 합칠 계획이다. 대한항공 측은 "LCC가 꾸준히 성장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단 규모 확대와 원가 경쟁력 확보가 필수"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합 LCC 출범 일정을 놓고 대한항공 측은 "향후 3개 회사가 협의해 수립, 추진할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가격 협상력 커지는 등 도약 기회"
아울러 대한항공은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승인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2022년 공정위는 양사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국제선 65개 노선 가운데 26개, 국내선 22개 노선 중 14개 노선에서 경쟁 제한 우려가 크다며 10년 동안 슬롯을 다른 항공사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당시 공정위는 운임 인상 제한, 좌석 축소 금지 의무도 뒀다. 에어인천으로 소속사가 바뀔 예정인 아시아나항공 화물 부문 직원의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통합 과정에서 인위적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통합 항공사의 사업량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란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운항의 직접 인력(조종사, 승무원, 정비사 등) 외 간접 인력은 일부 업무 중복이 예상되지만 정년, 자연 감소분 등을 감안하면 구조조정 필요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직무 재교육과 인력 재배치도 적극 실시할 방침이라고 회사 측은 덧붙였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항공우주정책대학원장은 "양사 통합은 세계 항공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기회"라면서도 "운항 및 유지·보수·정비(MRO) 체계, 조직, 브랜드를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고 비용 부담 등 위기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사 조종사들이 몰아보지 못했던 기종 운항을 위한 교육 훈련을 받고 MRO 능력을 통합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을 잘 거쳐 안정을 찾으면 기재, 부품 도입만 해도 가격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에 항공사 경쟁력은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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