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예상 빗나가는 이재명 재판
법적 일관성도 잃은 위증교사 판결
외력에 변화 기대하는 비극적 정치
옛 법조기자로서의 감(感)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 송사에선 맥을 못 춘다. 예상은 작년 9월 구속영장 발부, 지난 15일 선거법 위반 형량은 벌금 80만 원, 25일 위증교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정도였다. 알다시피 영장은 기각, 선거법 위반은 깜짝 놀랄 중형, 위증교사는 아예 무죄가 났다. 감은 사실 누적된 경험이다. 그것도 법조계 지인들 의견까지 들어 보정한. 그런 경험칙의 잦은 어긋남은 다른 고려 요인에 대한 의구심을 낳는다.
이번 위증교사 건은 지난해 영장판사가 증거인멸 여지도 없을 만큼 혐의가 분명하다고 단정한 사안이다. 이 판단이 뒤집혔다. 한마디로 ‘혐의가 소명됐다(영장판사) 해도 입증되진 않았다(1심판사)’다. 위법행위는 확실하나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해되는지. 기교사법이 원래 교묘한 말장난의 고급 표현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어떠한가. 물론 무리한 기소라는 점은 논외로 하고 순전히 이번 판단에 한정한 얘기다.
논거는 고의성 여부다. “그렇게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같은 것이다. 재판부는 부추긴 정도지, 고의적인 위증 요구는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상대적 약자에게 기억에 반하는 내용을 제시하며 넌지시 압박하는 그림이다. 뭘 더 입증해야 고의성이 충족되나.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요구 수준을 유지한다면 더 다툴 것도 없다.
혹 지난 영장기각이 유권무죄(有權無罪)의 선례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당시 결정문은 다시 읽어도 희화적이다. 분명히 죄를 지었고 전에 증거인멸(위증교사)도 했지만 요번엔 증거인멸을 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순적 논리의 이유는 딱 하나, 그가 정당 대표라서다. 정치적 힘이 특별한 배려의 근거라면 모든 혐의에서 그는 이미 무죄다.
판결은 독립성을 갖지만 내부적으론 판례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아니면 사회의 기본골격인 법적 일관성도, 안정성도 무너진다. 이 대표 재판에 관한 한 이 원칙은 훼손됐다. 숱하게 남은 이 대표의 재판은 판사 성향과 정치 상황에 따라 매번 예측불허일 것이다. 정치판은 “미친 판결”과 “정의 실현” 구호를 바쁘게 바꾸느라 정신 못 차릴 것이다. 정치가 이 무한반복의 타임루프에서 또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동안 나라는? 국민은?
오해 말기 바란다. 윤석열 정권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재명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정치의 구조적 변혁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반민주적 독재적 지도자에게 온 국민이 포획돼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한 사람은 마땅한 국민적 요구에도 마이동풍 식으로 잘못된 제 길만 고집하고, 또 한 사람은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철옹성을 쌓은 채 오직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제1당의 정치력을 허비하고 있다. 어느 쪽도 틈새는 보이지 않는다. 대안도 거론할 수 없는 이 절망적 정치 상황은 최소한 민주화 이후 최악이다.
국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지는 지금, 내부의 변화가 무망하면 외력에라도 눈길 줄 수밖에 없다. 그 외력(이 대표로 한정하자면)의 하나가 사법 리스크일 것이다. 정상 사법절차에 따른 그의 불가피한 후퇴가 강고한 정치구조에 균열을 내는 계기가 되리란 기대를 숨기진 않겠다. 누차 강조했듯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를 벗을 길은 처음부터 없었으며, 여태껏 그래왔듯 방탄 외의 운신이 어려워 그 막강한 다수의 힘으로도 윤 정권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쓴 문구를 다시 소환하자면, 법적 판단은 판사 개인의 소신에 따른 것이나 그 무게는 종종 시대적 흐름을 좌우할 만큼 무겁다. 어쨌든 새 정치에 대한 희망은 또 아득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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