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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대해부] 왕따 소년은 어떻게 트럼프 정권 실세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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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대해부] 왕따 소년은 어떻게 트럼프 정권 실세가 됐나

입력
2024.12.01 07:00
수정
2024.12.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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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머스크,
어쩌다 우익 포퓰리즘 선봉장이 됐을까

일론 머스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출되지 않은 민간인이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 앉았다.

미 정치 매체 액시오스, 11월 7일 자 기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 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해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 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해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신설될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임명되며 일약 ‘실세’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쉽게 정의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혁신가이자 사기꾼’ ‘영웅이자 괴짜’ ‘몽상가이자 광신도’ 등으로 불려왔다.

전기차·우주·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그가 쌓아 올린 기술적 성과는 머스크를 천재 혁신가로 불리게 했다. 반면 2억 명의 팔로어에게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며 인터넷 공론장에 미친 악영향을 지적하며 그를 ‘사기꾼’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지난 11월 6일, 머스크는 트럼프의 당선 직후 자신의 X 계정에 이렇게 올렸다. “이길 싸움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페이팔과 팰런티어를 창업한 테크업계 거물 피터 틸이 그에 대해 남긴 말 역시 뒤늦게 조명되기도 했다. “절대로 머스크의 반대편에 베팅하지 마라.”

왜소했던 왕따 청소년이 7개의 회사를 만든 연쇄창업가가 되어 칭송을 받기까지, 이후 조만장자를 목전에 두고 미국 우익 포퓰리즘 정권의 실세로 변신하기까지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을 만든 시간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의 보카치카 해변에서 스페이스X 스타십 로켓의 여섯 번째 시험 비행을 앞두고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의 설명을 듣고 있다. 브라운스빌=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의 보카치카 해변에서 스페이스X 스타십 로켓의 여섯 번째 시험 비행을 앞두고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의 설명을 듣고 있다. 브라운스빌=AP 뉴시스


① 왕따 청소년에서 ‘연쇄 창업가’로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머스크의 어린 시절은 폭력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외골수적인 성격에 또래에 비해 체구가 한참 작았던 머스크는 동급생들의 주요 표적이었다. 심하게 폭행을 당해 코뼈가 통째로 내려앉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아버지 에롤 머스크는 어린 아들에게 수시로 언어폭력을 쏟아붓는 가정폭력 가해자였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공식 전기 ‘일론 머스크’에서 그는 “아버지의 언어적 학대는 정신적 고문이었다”며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했던 결정을 내내 후회했다”고 밝혔다. 어두웠던 시기에 그는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10시간씩 판타지 소설과 우주 과학 소설을 탐독했다. 훗날 창업가로서 펼친 우주 산업의 꿈은 이때 태동했다.

1998년 집투(Zip2) 창업 당시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27세의 일론 머스크. CBS 뉴스 캡처

1998년 집투(Zip2) 창업 당시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27세의 일론 머스크. CBS 뉴스 캡처

첫 창업은 12세 때였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해 만든 비디오게임 ‘블래스타(Blastar)’를 500달러에 판매한 게 시작이었다. 24세였던 1995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명문 스탠퍼드대에 입학했지만 이틀 만에 그만뒀다. ‘인터넷 세상이 곧 도래한다’는 예감을 믿었기 때문이다. 창업 전선에 뛰어들기 앞서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실험했다.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 한 알로 하루 세 끼를 연명하며 하루 단돈 1달러로 한 달을 지냈다. ‘이 정도 궁핍은 견딜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창업에 뛰어들었다.

동생과 함께 창업한 첫 번째 회사 집투(ZIP2)는 인터넷 기반 지역 정보 제공 사업이었다. 4년 만에 컴퓨터 제조사 컴팩에 매각했는데 당시 그가 28세에 쥔 돈은 2,200만 달러(약 250억 원)였다. 그는 곧바로 온라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엑스닷컴을 만들고, 쟁쟁한 경쟁사였던 피터 틸의 콘피니티를 인수해 미국 최초의 온라인 결제 서비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가 됐다. 페이팔이 2002년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 15억 달러(약 2조 원)에 매각될 당시 머스크의 나이는 겨우 31세였다.

2000년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왼쪽)과 일론 머스크가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 있는 기업 본사에서 페이팔 로고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 당시 29세였다. Paul Sakuma/AP, WP 캡처

2000년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왼쪽)과 일론 머스크가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 있는 기업 본사에서 페이팔 로고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 당시 29세였다. Paul Sakuma/AP, WP 캡처

천문학적 돈을 손에 넣은 그는 이때부터 미국을 넘어선 세계적, 우주적 차원의 꿈을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오랜 비전이었던 재생에너지와 우주산업에 가진 젊음과 시간, 돈을 모두 바쳤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그는 스페이스X(우주 발사체), 테슬라모터스(전기차), 솔라시티(태양광 에너지)를 연쇄 창업했다.

② 효율에 미친 워커홀릭, 정부에도 '효율성' 적용

사업가로서 그는 비용을 절감하고 성과를 극대화하는 ‘효율성’을 추구했다. 스페이스X를 시작할 당시 그는 기존의 우주 발사체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점에 주목했고, 로켓의 1단 부스터를 재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발사 비용을 30%가량 절감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의 보카치카 해변 스타베이스에서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달·화성 탐사용 대형 우주선 '스타십'의 6차 시험 발사가 이뤄지고 있다. 시험 발사는 우주비행사가 탑승하지 않은 무인 비행으로 이번 발사의 목표는 스타십과 로켓 전체 시스템을 100% 재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운스빌=AP 뉴시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의 보카치카 해변 스타베이스에서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달·화성 탐사용 대형 우주선 '스타십'의 6차 시험 발사가 이뤄지고 있다. 시험 발사는 우주비행사가 탑승하지 않은 무인 비행으로 이번 발사의 목표는 스타십과 로켓 전체 시스템을 100% 재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운스빌=AP 뉴시스

그는 조직도 효율성 원칙에 따라 운영했다. 회의와 절차를 최소화했고, 팀을 작은 규모로만 꾸려 대표인 자신이 직접 소통했다. 스스로 ‘나노 매니저’라 칭할 정도로 모든 사업의 디테일에 관여했다. 주 120시간씩 일하며, 직원들에게도 비슷한 근무량을 요구했다. 과거 테슬라의 생산관리자는 “테슬라에선 주당 7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 회사에서 해고된 것이야말로 자신의 결혼 생활에 가장 좋은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머스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를 맡게 된 것 역시 사업의 원칙인 극도의 효율성을 국가 경영에도 적용하겠다는 두 사람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앞으로 머스크는 정부효율부 수장으로서 정부 직원의 고용과 해고, 전체 기관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그는 연방 정부의 6조8,000억 달러 예산을 최소 2조 달러 이상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2022년 트위터를 인수했을 때도 직원의 80%가량을 해고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AFPI)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머스크 CEO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효율부' 수장으로 지명됐다. 팜비치=AP 뉴시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AFPI)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머스크 CEO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효율부' 수장으로 지명됐다. 팜비치=AP 뉴시스


③ 혁신의 아이콘에서 '인터넷 생태계의 교란자'로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중의 머스크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혁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가로 손꼽혔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우주 개발 등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는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했다. 테슬라 사업 초기엔 민주당 정치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며, 2016년까지만 해도 트럼프에 대해 “헛소리꾼”이라며 혹평하기도 했다.

트위터 로고(왼쪽)와 스마트폰에 비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계정. 제니차=로이터 연합뉴스

트위터 로고(왼쪽)와 스마트폰에 비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계정. 제니차=로이터 연합뉴스

머스크가 우파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22년 말 트위터를 인수하면서부터였다. 바이든 정부의 테크업계 규제 정책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그는 점차 공화당 기부금을 늘리기 시작했고, 그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트위터를 통해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가장 먼저 정지되어 있던 트럼프와 칸예 웨스트 계정부터 복구했다. NBC에 따르면 이때 총 6만2,000여 개의 계정이 복구되었는데 이 중 일부는 백인우월주의자, 신나치주의자들의 계정이었으며, 음모론을 부추기는 계정도 다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0월 5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에서 유세를 가진 가운데, 앞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올라 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버틀러=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0월 5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에서 유세를 가진 가운데, 앞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올라 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버틀러=로이터 연합뉴스

머스크는 “트위터는 지금보다 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자신은 우파 정치의 프로파간다를 증폭시키는 수단으로서 엑스(X)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캠페인을 지원하면서 머스크는 하루 평균 67.8회(2024년 7~9월) X계정에 글을 올렸는데, 공유된 게시물 중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가짜뉴스 △9.11테러에 대한 음모론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허위 정보 △FBI가 2020년 대선 결과를 조작했다는 허위 주장도 포함돼 있었다. CNN에 따르면 머스크가 X에 공유한 선거 관련 허위 정보의 조회수는 무려 20억 회에 달한다.

머스크의 인수 후 X의 우경화 현상에 대해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독성이 강한 게시물과 우파적 편향이 있는 게시물은 증폭이 더욱 심화된다”며 “X는 플랫폼으로서 점점 더 우익화, 과두 정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X가 새로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본거지가 됐다”고 평가했다.

④ 자신과 닮은 트럼프 손잡으며 우파 정권 실세로

머스크가 트럼프를 정치적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은 사업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NYT는 “머스크가 규제에 얽힌 사업적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머스크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여러 규제 기관으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당했다.

머스크는 트럼프의 규제 완화 정책이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기대하고 트럼프의 재선에 1억7,500만 달러(약 2,440억 원)를 쏟아부었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미국 CEO로선 전례가 없는 선거전 참여”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주니어가 지난 17일 전용기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과 함께 맥도널드 빅맥과 치킨너겟 등을 나눠 먹는 모습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했다. 트럼프 주니어 X 캡처

트럼프 주니어가 지난 17일 전용기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과 함께 맥도널드 빅맥과 치킨너겟 등을 나눠 먹는 모습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했다. 트럼프 주니어 X 캡처

막대한 선거 투자의 결실은 달콤할 전망이다. 스페이스X는 현재 미국 정부과 100억 달러(약 14조660억 원) 이상의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 계약의 규모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조금 삭감 등 정부효율부 수장으로서 권한을 사용해 경쟁사엔 불이익이 되고 머스크 회사는 이익을 보는 조치를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테슬라의 경우 중국산 전기차 수입 제한으로 인해 미국 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머스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화성 거주 등 어린 시절부터 상상한 공상과학 세계관을 현실화하는 데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X에 “정부효율부는 지구를 넘어 생명을 확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썼다. 이 말은 관료주의가 자신의 길을 막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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