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의 원인이 결국 미궁에 빠졌다. 4개월간 전담팀을 꾸려 합동감식과 압수수색까지 벌인 경찰은 “정확한 원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수사를 마쳤다. 배터리관리장치(BMS)가 모두 불에 타 데이터를 분석할 수 없었다는 궁색한 설명도 내놨다.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주민들이 피난 생활까지 했는데도 벤츠는 사실상 면죄부를 받고 애꿎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등 4명만 송치된 건 유감이다. 지자체와 보험사도 수백억 원의 피해 보상과 구상권 청구를 둘러싸고 난감한 처지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고로 인한 파장이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장 우려되는 건 치명타를 맞은 ‘K-전기차 생태계’다. 전기차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국내 전기차 제조사뿐 아니라 배터리 업계, 관련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까지 흔들리고 있다. 전기차 공포(포비아)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심했다. 물론 화재의 위험이 간과돼선 안 되지만 충분히 예방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전문가들 해명에도 마치 아무런 대책도 없는 것처럼 알려진 건 심각한 오해다.
실제로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에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고속 성장하고 경쟁국은 앞서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전 세계에서 운행 중인 전기차가 지난해 4,603만 대에서 올해 6,403만 대, 내년에는 8,514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을 제대로 도전도 못 해보고 포기하는 건 어리석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 전기차 업체가 된 중국 비야디(BYD)는 이젠 우리 안방시장까지 점령할 태세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을 감안하면 전기차는 결국 인류가 가야만 하는 길이다. 우린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과 글로벌 배터리 업체도 갖고 있다. 다른 국가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데 스스로 죽여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K-전기차 생태계가 과도한 공포와 편견을 넘어 다시 미래 성장 기회를 향해 달릴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