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이탈리아 볼로냐아동도서전에 가 보면 어른들 잔치거든요. 어린이를 위한 아동도서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거의 안 보여요. 그런데 여기는 아이들이 와서 직접 즐긴다는 게 정말 특별하네요."
지난달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만난 이금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최종 후보에 올랐던 그는 이날 '일생과 함께하는 문학: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성인까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작가는 "책을 특별한 매체라기보다 놀이처럼 접근했으면 좋겠다"며 "작가들도 볼로냐아동도서전에 참관하러 그냥 가듯 다 같이 흥겹게 참여할 수 있는 도서전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했다.
주말 북새통… 작가 강연에 300여 명 몰리기도
국내 최대 규모의 아동도서전으로 첫발을 디딘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은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도서전을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결과 5만 명이 다녀가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국내외 아동 전문 출판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한국 아동문학의 눈부신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날 도서전에서 만난 백희나 작가는 "이미 10여 년 전 '우리나라 그림책이 제일 좋네'라고 느꼈다"며 "비단 글을 읽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책 자체가 수준 높은 책들이 많다"고 했다.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추모상을 받은 백 작가는 이날 뜨거운 인기를 체감했다. 앞서 '어린이와 판타지'라는 제목으로 한 주제 강연에는 300명이 넘는 구름 관중이 몰렸다. 강연 후 이어진 사인회도 줄이 끊이질 않아 장소를 옮겨 1시간 넘게 계속했다. 백 작가는 도서전에 자신의 출판사 스토리보울 부스를 차리고 신작 '해피버쓰데이'도 처음 공개했다.
어린이들 특별히 대접하는 책 잔치… 작가들 "감개무량"
"어른 여러분은 죄송하지만 좌석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오직 어린이만을 위한 북토크예요." 어린이를 위한 책 잔치 한편에서는 어린이 대상 북토크도 열렸다. 서울예대 아프로프로젝트가 차린 부스에서 진행된 '당사자 비평의 어린이 참여형 북토크'는 어린이를 특별히 대접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도서전 주제 전시를 기획한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사회로 윤슬빛, 위해준, 강인송, 조은비 등 4명의 작가들은 '어린이 비평가'들 앞에서 직접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질문과 대답을 나눴다.
도서전은 아동문학출판계 축제를 방불케 했다. 어린이는 물론 작가들도 즐기는 잔치였다. 창비 부스에서 만난 김유진 작가는 자신의 동시집 '나는 보라'에 직접 사인을 하고 있었다. 매대에는 '작가님 친필 사인본'이라고 적힌 책들이 진열돼 어린이 독자들을 유혹했다. 김 작가는 "이렇게라도 한번 독자들 눈길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한다"며 "맨날 해외 도서전만 다니다가 국내에서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는 자리가 열리다니 너무 좋고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도서전은 독자와 작가들이 직접 만나 소통하는 장이 됐다. 출판사 부스 곳곳에서 작가 사인회가 마련됐고, 계획에 없던 사인회가 즉석에서 열리기도 했다. 오늘의 어린이책 다움북클럽 부스에서는 어린이들의 사랑을 그려 호평받은 '최악의 최애'를 쓴 김다노 작가의 사인을 받으려는 어린이 독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김 작가는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인연이 된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왔더라"며 "와서 보니 도서전 공간이 크고 넉넉해 놀랐다"고 했다.
현장은 아동도서에 목말랐던 이들로 붐볐다. 중학교 2학년 딸과 함께 방문한 강수경(48)씨는 "서울국제도서전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매년 찾곤 하는데 부산에서도 도서전이 열려 너무 좋다"고 했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장병순씨는 "방금 구매한 책에 바로 저자 사인을 받았다"며 "작가님들도 계시고 직접 책도 살 수 있는 밀도 높은 자리인 것 같다"며 웃었다.
외국 출판사들도 동참… K아동문학 힘 확인
'국제'아동도서전을 표방한 만큼 해외 출판사들도 눈에 띄었다. K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팅 차이 대만 가오슝시립도서관 국제그림책센터장은 "34가지 언어로 51개국 총 16만 권을 보유한 대만에서 가장 상징적인 우리 그림책 도서관에만 한국 그림책이 1만 권 정도 있다"며 "한국판 그림책을 읽으러 오는 한국 그림책 작가의 팬들도 많아서 이번 도서전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아동문학을 부러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이수지 작가의 팬으로 직접 그의 책 5종을 대만에 소개한 렉스 하우 로크스출판사 대표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대만에 가져다 소개할 생각"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출판그룹 그라미디어 소속인 엘렉스미디어의 데와 아유 스와라트리 편집자는 "과학만화 등 한국의 논픽션 책을 눈여겨보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출판 시장에서 그림책은 서구권 중심이었는데 2년 전부터 일러스트가 유니크하고 주제도 깊은 한국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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