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에게는 트라우마 같은 표현
무례를 넘어선 차별과 조롱”
배우 유연석, 채수빈 주연의 MBC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이 수어를 희화화했다는 지적을 받아 제작진이 공식 사과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방송된 드라마 1회에서는 ‘뫼 산’(山)을 뜻하는 수어 표현이 가운뎃손가락 욕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극 중 앵커가 수어 통역사에게 농담을 던지는 장면이 방송됐다.
이 장면에 대해 ‘수어를 조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제작진은 지난달 29일 시청자 게시판에 “일부 수어 장면으로 심려를 끼친 점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올렸다.
제작진은 “드라마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중요한 테마로 삼아 기획한 작품으로, 농인들의 소중한 소통 도구인 수어를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농인들과 한국 수어가 겪어온 어려움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반영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제작진은 또 “수어는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이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소재”라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중요한 소통 도구인 수어의 가치를 오롯이 전달하는 작품으로 남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 22일 방영된 드라마 1화 초반에 등장한다. 수어 통역사 홍희주(채수빈 역)가 산사태 뉴스를 전달하던 중 ‘산’ 수어가 반복 송출되는 방송 사고가 벌어졌는데, 극 중 앵커 나유리(장규리 역)가 이를 손가락 욕으로 묘사하며 웃어 보이는 장면이다. 나유리는 ”이거 산이죠? 뫼 산? 잘했어요. 엿 제대로 먹여줬네요. 아니, 뫼 산”이라며 양손의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 흔들어 보였다.
이후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는 ‘청각장애인 수어 통역을 조롱거리로 삼았다’는 취지의 항의 글이 잇달았다. 한 시청자는 “수어 통역사의 손짓이 욕설인 것처럼 되는 바람에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비장애인이 청각장애인의 소통 수단인 수어를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앙대 수어동아리 ‘손끝사이’는 지난달 26일 논평을 통해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손끝사이는 “‘산’ 수어가 지속해서 농담거리로 소비돼 농인에게는 트라우마와 같은 표현”이라고 짚으며 “이는 무례를 넘어 차별과 조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농문화와 수어에 대한 이해를 전혀 담아내지 못한 채 서사를 위한 도구로 (수어를) 소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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