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한국 현대 필화사 1' 출간 기자간담회
"접시닦이가 대학 학장이 되고, 마을 설교사가 대학총장이 되었다. 건축기사가 중앙식량행정처의 장이었다."
무엇을 비판하는 것일까. 소설가 강용흘(1903~1972)이 해방 직후 미군정 관리들이 아마추어 수준이라는 것을 신랄하게 꼬집은 말이다. 강용흘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함경남도 흥원에서 태어난 그는 항일활동을 하며 중국, 일본, 캐나다를 거쳐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의학, 하버드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했다. 미국 소설가 펄 벅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미군정의 출판부장(공보부장)을 거쳐 1947~1948년 주한미군 제24군단 민간 정보부대 정치분석관 겸 자문관 등 요직을 지냈다. 그러나 미국의 한국 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하다 미군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이후 모든 업무에서 배제당한 채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임헌영(83)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책 '한국 현대 필화사 1'에서 정의한 대로 필화(筆禍)가 '자신의 사상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나타내는 일체의 행위에 대하여 개인이나 집단에 국가가 가하는 제재와 압력, 형벌 등에 대한 총칭"이라면, 강용흘의 삶 역시 필화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임 소장은 책 출간을 기념해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필화란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것"이라며 "해방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는 미국의 헤게모니인 반소(련), 반공, 반중(국)이었으며 이후 형성된 미·일 헤게모니가 지금도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화 올림픽 있다면 한국이 메달 받았을 것"
한국 현대사가 필화의 격랑에서 자유롭지 않은 건 필연이다. 한국전쟁과 분단, 독재정권 통치와 민주화운동으로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이념 대립과 사회적 갈등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임 소장은 "한국이야말로 20세기 후반 세계 지성사에서 가장 필화가 많았다. 필화 올림픽이 있다면 아마 우리가 진작에 (메달을) 받았을 것"이라며 "이 책을 1~3권까지 한 번에 내려다가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고 하니까 이승만이 어떤 사람인가 알게 하기 위해서 1권만 먼저 냈다"고 말했다.
책은 해방 이후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80년에 걸쳐 일어난 필화를 총 3권에 걸쳐 다룬다. 출간된 제1권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기를 정치사회사, 사회사상사, 문학예술사 부문에서 발생한 필화를 중심으로 짚어본다. 2권은 장면과 박정희를, 3권은 전두환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다룬다.
임 소장은 필화의 개념을 '글로 인한 탄압'을 넘어 넓은 의미로 확장했다. 그는 "붓이라는 것은 자기 의사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에 불과하다"며 "자기 의사는 말로도, 행동으로도 표현하기 때문에 정치인, 학자, 만담가, 가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벌어진 사건을 필화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격랑을 하나하나 다루면서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참담하게 희생당하거나 고난의 생을 보냈던가를 상기했다"는 임 소장은 "모든 필화는 국가폭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 기념관을 세운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마음이 급해서 2025년까지 3권을 낼 것"이라며 "이승만을 존경하는 국민이 많은데, 이분들이 꼭 이 책을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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