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한울원전 방호훈련 르포
원전 근처서 드론 켜기만 해도 감지
모니터에 조종자 위치·기종도 파악
바주카 형태 재머 쏘자 작동 불능
드론 사용 늘면서 출몰 횟수 늘어
"최첨단 기술로 탐지·퇴치 힘쓸 것"
“부구천 건너 드론 출현. 재머(전파교란장치) 발사합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2시 드론 방호 훈련이 이뤄진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한울원자력본부(한울본부)의 북동쪽 끝 지점 한 초소. 무전기로 “사전 비행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 드론이 나타났다”는 음성이 흘러 나오자, 초소에 있던 방호요원은 울타리 밖 상공에 드론 한 대를 확인하고 곧바로 전자총을 꺼내 전파를 발사했다. 불법 드론은 초소에서 동해로 흘러 나가는 폭 150m 하천 ‘부구천’ 건너 하늘 위를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러나 바주카처럼 생긴 전파교란장치 재머를 쏘자, 마비가 온 듯 제자리에서 우왕좌왕 하더니 멀리 날아갔다. 원전 밖에서는 군과 경찰이 드론 조종자를 붙잡아 작동 불능된 드론을 회수하면서 훈련은 마무리됐다.
원자력발전소(원전)와 같은 국가 중요시설 주변에 승인을 받지 않고 비행하는 드론이 늘면서 국내 원전의 안전을 지키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와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도 드론 방어에 힘을 쏟고 있다. 이날 한울본부에서 실시한 훈련도 4대의 드론이 무작위로 날아 공격하고 이 중 한 대는 폭발물을 적재해 침투한다는 가정 아래 이뤄졌다. 훈련에는 경찰과 소방뿐 아니라 군인 등 240명이 참여했다.
훈련에 참가한 이정훈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물리방호실장은 “방해 전파가 발사되면 불법 드론은 추락하거나 이륙한 위치로 돌아가는데 방금 본 드론은 되돌아간 것”이라며 “불법 드론이 식별되면 동시에 기종과 조종자 위치까지 파악되고 곧바로 경찰에 통보돼 조종자를 검거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1년 말 한울원전을 비롯해 고리(부산 기장군)·새울(울산 울주군)·월성(경북 경주시)·한빛(전남 영광군) 등 국내 5개 원전에서 원전 밖 500m 거리의 드론도 무력화할 수 있는 전파교란장치 재머를 도입했다. 재머는 드론 조종 신호나 고도·위치정보 신호 전파를 교란해, 해당 드론을 상공에 머무르게 하거나 원위치로 돌아가게 하거나 추락시킨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한울원전 훈련에도 방호 요원이 뭉툭한 모양의 전파교란장치 재머를 쏘자, 작동불능 상태가 돼 애초 출발지로 돌아갔다.
휴대용 장치인 재머는 총 면적 359만5,959㎡의 한울본부 가장자리에 촘촘하게 설치된 수십 여 곳의 초소마다 전부 배치돼 있다.
재머가 원전 상공에 뜬 불법 드론을 무력화한다면, 무선주파수를 이용해 드론 비행을 탐지하는RF(Radio Frequency)스캐너는 원전 주변 반경 3.7㎞내 드론 위치와 기종, 조종자 위치를 파악한다. 드론의 전원을 켜기만 해도 상황실 모니터에는 모든 정보가 생생히 표시된다. RF스캐너는 지난해 6월 국내 원전 5곳에 모두 구축됐다.
원전 안이나 주변에서도 허가 받지 않은 드론을 날리는 건 불법이다. 원안위에 따르면, 원전 주변은 미국 9·11 테러 이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돼 원전 외곽 반경 18.6㎞ 내에서는 국토교통부로부터, 반경 3.7㎞ 안에서는 국방부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드론을 띄울 수 없다.
한수원은 국내 원전 5곳 주변 도로 등에 비행금지구역을 알리는 입간판과 현수막 수십 개를 부착해 놨다. 그러나 원전 주변 해안 등지에서 낚시 드론 등을 허가 없이 띄우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인철(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원전 인근에서 탐지된 불법 드론은 533건으로, 2022년 139건에서 2023년 250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8월까지 탐지된 건만 137건에 달한다.
이날 훈련 과정을 지켜보고 평가한 김은경 원안위 원자력안보팀장은 “원전 주변 무허가 드론 비행이 적발되면 과태료 처분을 받게된다"며 “드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를 이용한 테러 위협도 커지는 만큼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