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직원 등 핵심인력 접근 中으로 이직시켜
유출 브로커 처벌법 마땅찮아, 법 개정 움직임
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 인력들을 중국 업체에 대거 스카우트해 삼성의 독자적인 기술을 빼돌린 브로커가 검찰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1명은 구속됐는데, 기술 유출을 목적으로 국내 대기업 직원의 이직을 알선한 브로커가 구속된 건 처음이다.
3일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재직 중이던 반도체 핵심 연구 인력을 중국 업체로 이직하도록 알선한 국내 무허가 헤드헌팅 업체 대표 A(64)씨를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출신인 A씨는 국내에 헤드헌팅 업체를 차린 뒤 반도체 핵심 연구인력들과 접촉해 이들을 중국 반도체 컨설팅 업체 B사로 끌어들여 수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유사한 방법으로 인력 유출에 가세한 다른 헤드헌팅 업체 대표 2명도 불구속 송치됐다. B사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서 임원을 지낸 최모씨가 주도해 만든 회사다. B사는 이후 2020년 중국 청두시 투자를 받아 반도체 업체 '청두가오전'을 세운다. 청두가오전 설립엔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 출신 오모씨도 관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가핵심기술인 삼성전자의 20나노급 D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온도와 압력 등 600여 단계 공정 정보 등이 A씨의 헤드헌팅 업체→B사→청두가오전으로 넘어갔다. 이 덕에 청두가오전은 설립 1년 3개월 만인 2022년 4월 시범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 수준까지 진입했다. 중간에 국내 경찰 수사에 덜미를 잡혀 양산 단계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공장 운영이 중단됐지만, 통상 4~5년 걸리는 과정을 훔친 인력과 기술로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 기술의 경제적 가치는 최소 4조3,000억 원에 이른다.
앞서 경찰은 최씨와 오씨를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이미 지난 9월 구속 송치했다. 또 A씨 알선으로 중국 업체로 넘어가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임직원 등 10여 명도 같은 혐의로 송치했다. 이들은 고액 연봉과 주거비, 교통비 지원을 제안받고 이직했으나, 기술을 넘긴 후 1년 만에 급여가 끊기고 장기 휴직 처리되는 등 '토사구팽'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를 포함해 총 21명을 검찰에 넘기면서 경찰 수사는 마무리했지만 과제도 남았다. 국가핵심기술 유출에 관여하는 브로커들을 처벌할 마땅한 법령이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상 기술 인력 브로커 처벌 규정이 없어 경찰은 이번에 직업안정법을 적용했다. 국외 직업소개사업을 할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고 사업장을 운영해야 하는데 어겼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해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함께 15억 원 이하의 벌금)나 산업기술 유출 행위(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에 비해 처벌 수위가 크게 낮다. 이에 기술 유출 브로커도 강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규제를 회피하기 용이한 인력 유출 방식으로 우리 기술이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을 통해 경종을 울릴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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