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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냐 천주냐'… 젊은 다산의 고뇌 담긴 일기 4종 국내 최초 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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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냐 천주냐'… 젊은 다산의 고뇌 담긴 일기 4종 국내 최초 완역

입력
2024.12.03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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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양대 교수, '다산의 일기장' 출간
다산이 33~35세 때 쓴 일기 4종 완역
"다산의 일기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

다산 정약용 연구 권위자인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다산 정약용 연구 권위자인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다산 정약용 선생이 살아 돌아와 저를 만난다면 '너 때문에 성가시다. 그래도 내 속을 알아주니 고맙다' 하지 않으실까요?"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일기가 국내 최초로 완역됐다. 다산 연구 권위자인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3일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젊은 시절 다산의 돌격대장이자 다혈질적 면모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며 "만고의 성인이자 애민정신의 화신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다산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임금과 천주 '두 하늘' 아래 고뇌한 '인간 다산'

정 교수는 다산이 33~35세 때 쓴 일기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 등 4종을 우리말로 옮긴 뒤 주석을 달았다. 다산의 문집에는 모두 누락된 자료들이다. 이 일기는 왜 전부 문집에서 빠졌을까. 다산이 "자신의 삶에서 천주교의 흔적을 어떻게든 지워내려고 애쓰던 시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신앙(천주교)을 버렸지만 완전히 떠나지 못했고, 임금을 사랑했지만 천주도 사랑했"던 자신의 자가당착과 이율배반이 부끄러웠을 것이란 게 정 교수의 해석이다.

정 교수는 다산이 일기 속에 감춰둔 행간과 맥락에 주목했다. 일기는 '몇 월 며칠 어디 가서 누구와 만났다'는 식의 무미건조한 정보가 나열돼 있다. 일기 본문 분량 역시 원고지 300매 정도에 불과하다. 액면 그대로 읽으면 오히려 의도에서 멀어진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 그는 다산의 문집에 실린 편지와 시문, 각종 사료에서 찾은 상소문, 족보 등 역사적 사실과 일기 속 정황을 꼼꼼하게 교차 검증했다.


다산의 일기장·정민 엮고 씀·김영사 발행·688쪽·4만 원

다산의 일기장·정민 엮고 씀·김영사 발행·688쪽·4만 원


다산의 일기는 정치적 행위… 행간 살펴야

일기의 이면에는 '인간 다산'의 면모가 드러난다. 정 교수는 "다산은 유독 천주교와 관련된 행보에서 계속 자기모순적인 파열음을 일으킨다"며 "당시 다산은 (천주교에) 풍덩 빠졌다가 물가로 나와 젖은 옷을 입은 상태로 임금과 천주라는 두 하늘 아래에서 고민에 빠진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평생 천주교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다산의 고뇌가 일기에 숨어 있다는 얘기다. 스스로 검열한 흔적도 있다. 이를 테면 다산은 자신의 매형이자 국내 천주교 최초의 세례자로 1801년 참수돼 순교한 이승훈 관련 기록을 부러 덜어냈다.

일기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정 교수는 "다산은 우연히 지나다 들러 그들을 만난 것처럼 쓰고 있지만 절대 허투루 찾아간 게 아니고 정략적 접근임이 명백했다"며 "관련 기록들을 찾아 읽다 보면 계속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결국 다산의 일기 쓰기는 "다분히 정치적 행위"로 "훗날의 증빙으로 삼기 위한 비망록의 성격이 강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 교수는 다산 연구로 국학계와 천주교계 양쪽에서 비판받는 고충도 토로했다. 그는 "다산 일기의 속살을 읽은 것은 다산을 위선자로 몰고 가거나, 신앙에 대한 정체성 문제를 양단간에 갈라보려는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다산의 엇갈리는 갈지자 행보는 그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징표가 아니라 서학이라는 거대한 체계와 대면한 18세기 조선의 어정쩡한 스탠스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외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다산이 아닌 연암 박지원이라는 그는 "하루빨리 다산의 그늘에서 벗어나 연암의 광야로 달려가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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