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국가 연구비 지원받으며
①개인 회사 차려 사장까지 맡아
②논문에는 모국 저자들 수두룩
③해마다 장기간 모국으로 출장
그래도 단장에 앉힌 기초과학연
편집자주
노벨상 수준의 연구 역량 확보를 목표로 예산을 집중하고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며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한 지 13년이 됐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찾은 연구 현장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현장의 박탈감이 더 심화하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한 외국인 연구단장이 한국이 아닌 고국과의 연구에 시간을 쏟으며 개인 회사까지 차린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기관 자체 감사에서 주의·경고 조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간 수십억 원에 이르는 연구비를 쓰는 대규모 연구단을 별다른 경쟁 없이 이어받은 그의 주요 논문 저자들은 대다수가 고국의 제자 등 IBS 소속이 아니었다.
기초과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11년 대전에 설립된 IBS는 한국 노벨과학상의 산실이 될 걸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과학계 안팎에선 10년이 넘었는데도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과 차별화할 만한 뚜렷한 경쟁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비판이 늘고 있다. 특히 많은 혜택을 주며 '모셔온' 외국인 과학자가 한국에 실질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 기초과학에 어떤 기여를 했나
감사에서 주의·경고를 받은 A씨는 당시 연구단장이었던 미국인 과학자와의 인연으로 2015년 IBS에 합류했다. 2022년 단장의 정년이 다가왔는데 성과가 좋다고 판단한 IBS는 해당 연구단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이어받을 단장 선임 절차에 나섰다. 이때 연구단 내 그룹리더 직을 맡고 있던 A씨가 단독으로 지원서를 냈는데, 선임 과정 중 실시된 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한국일보가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IBS 내부 감사 자료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기업을 2018년 설립해 주식 100%를 소유하고 2022년 2월까지 부사장을 맡아왔다. 2009년에도 A씨는 회사를 차리고 2017년까지 사장을 했다. IBS의 연구인력은 영리 목적 회사의 임원·지배인을 맡을 수 없고, 직무와 관련된 타인의 기업에 투자도 금지된다. IBS 연구단에 전념하라는 운영규칙 때문이다. 감사 보고서는 IBS가 지난해 내부 위원회를 통해 A씨의 이 같은 규정 위반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연구 성과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았다. 연구단 합류 이후 지난해 5월까지 총 80편의 논문을 썼는데, 고국의 특정 연구기관 소속 과학자들과 작성한 게 37편(46.3%)에 달했다. 이 중 19편은 IBS에서 성과 평가를 받을 때 우수함을 입증하는 근거 자료로도 활용됐다. 감사보고서는 이에 대해 △IBS로부터 인적·물적 자원을 받지 않은 개인적인 연구 활동이고 △IBS 연구단에서 직접적으로 얻은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성과와 구별돼야 한다고 짚었다. A씨의 논문 가운데 이른바 '3대 과학저널'(네이처, 사이언스, 셀)에 실린 건 학술검색 서비스 '구글 스칼라' 기준 36편이다. 그중 14편(38.9%)은 저자에 IBS 소속 연구자가 없고 A씨가 설립한 기업과 모국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들만 있다. 36편 가운데 A씨와 같은 연구실의 한국인 IBS 과학자가 제1저자인 논문은 없다.
IBS는 연구단에 전념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외국인을 포함한 소속 연구원들의 제한적인 외부 활동은 허가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성과물인 논문마저 IBS 소속도 아닌 외국인 저자들로 채워지고 있다면 A씨의 연구를 IBS의 성과로 볼 수 있을지, A씨가 한국 기초과학 발전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을지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A씨는 해마다 모국에 장기 출장을 갔다. 최근 5년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제외하곤 매년 90~117일을 모국에 머물렀다.
IBS 이사회, 과기정통부는 뭘 했나
이런 감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A씨는 올해 연구단장에 올랐다. 기존 외국인 단장이 감사에서 경고를 받은 다른 외국인 단장에게 경영 미참여 서약만 받은 채, 별다른 제재 없이 연구단을 '승계'한 셈이다. 지난해 기준 IBS 연구단(실험 분야)의 평균 예산은 연 57억 원 규모다. IBS 관계자는 "단장 선정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건 학문적 우수성이기 때문에 일반 감사 결과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문적 우수성'이 명백한 규정 위반을 지적한 내부 감사 결과를 능가할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게 과학계의 시각이다.
A씨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IBS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외부 활동과 기관 성과를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하라는 감사의 요구에 대해 IBS 측은 '연구자의 양심과 자정'을 주요 대책으로 내놨다. IBS 관계자는 "성과를 제출할 때 자체적으로 판단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며 "연구자의 자정 활동, 내부 평가위원의 검토를 통해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봤다"고 말했다. IBS 연구인력의 영리 업무와 관련해서도 감사 보고서에서 △명확한 근거·절차·기준이 없고 △사후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후속 조치를 마련하라고 했지만, 1년이 다 된 지난달에서야 대책을 내놓았다.
IBS는 해외의 선진 연구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우수한 성과를 낸 외국인 과학자 영입에 힘을 쏟아왔다. 하지만 권한만 부여한 채 관리엔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IBS를 소관기관으로 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IBS의 사업·운영·예산 계획을 보고받을 뿐 뾰족한 감독 수단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IBS 정기이사회 구성원인 만큼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감사 보고서 지적 사항의 후속 조치가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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