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주축' 김용현·여인형·이진우·곽종근
지난 3월 '공관 모임'에서 먼저 만나
계엄사령관 박안수는 국군의날 시가행진
10년 만에 부활 주도 후 육군참모총장 임명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2시간 반 만에 국회에서 해제 요구안이 통과돼 사실상 무산되자, 많은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실행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측근이었던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 보면 계엄이 언제 선포돼도 대응 가능하도록 암암리에 준비됐을 수 있다고 볼 만한 정황이 드러난다.
‘계엄의 전조’로 볼 만한 정황으로는 ①김용현 전 장관이 경호처장이었던 지난 3월 비상계엄의 주축이었던 인물들이 긴밀히 회동했다는 점 ②지난해 국군의날 행사 당시 ‘권위주의 정권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시가행진을 10년 만에 부활시킨 인물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었다는 점 ③지난 9월 임명된 김용현 전 장관의 인사가 유례없이 갑작스러웠다는 점 ④윤 대통령의 상습적인 ‘반국가세력 척결’ 발언 등을 꼽을 수 있다.
① 김용현 및 주축 인물들, 3월에 미리 만났다
윤 대통령이 3일 밤 선포한 비상계엄을 현장에서 직접 실행에 옮긴 인물은 김 전 장관과 그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4인방이었다.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직접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을 필두로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46기) 계엄군 병력을 동원한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46기)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48기)이 비상계엄의 주축이 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계엄군 병력을 직접 움직인 곽종근·이진우 사령관, 정치인 체포조를 운영했다고 알려진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육사 48기)이 지난 3월 김 전 장관이 주최한 ‘공관 모임’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김 전 장관은 경호처장으로 재직할 당시였던 지난 3월 한남동 공관으로 이들 세 사람을 불러 회동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미리 계엄 시나리오가 논의되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전 장관은 지난 8월 열린 청문회 당시 ‘공관 모임’ 의혹을 전면으로 부인했었다. “계엄 준비를 위해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채워 놓은 것이 아니냐”는 민주당 박선원 의원의 질의에 김 전 장관은 “대통령 경호와 밀접한 부대장들을 격려하는 차원으로써 1년에 수차례씩 있었던 관례”라는 해명을 내놨다.
② 박안수, 시가행진 부활시키고 육군참모총장 자리 꿰찼다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기습 발표했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은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었다. 계엄사령부의 역할을 고려하면 육군참모총장보단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요직에 통제하기 쉬운 인사를 전략적으로 앉혔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해군 출신인 김 합참의장과 달리 박 총장은 육사 출신이며, 이번 비상계엄의 주축이 된 주요 인물 전원이 육사 출신이다.
박 총장이 윤 대통령의 공식적인 ‘안보라인’이 된 건 지난해 10월,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행사기획단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박 총장은 2013년 이후 10년 만에 부활한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맡아 준비했다. 1998년 이후 국방부는 5년 단위로 꺾어지는 국군의날 기념식마다 병력과 장비 등을 동원해 시가행진을 벌였으나, 2018년에는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고려해 시가행진이나 무력 과시 없이 축제 형식으로 기념식을 진행했었다.
박 총장은 이 임무를 마치고 2023년 10월, 윤석열 정부의 두 번째 대장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하며 제51대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됐다. 당기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 들어간 예산은 101억 원으로, 예년 예산의 5배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시가행진이 열리지 않았던 2020~2022년 국군의날 기념식 예산은 약 21억 원이었다.
지난해 부활한 시가행진은 올해 국군의날 행사에서도 열렸다. 2년간 연달아 시가행진 행사를 진행한 것은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는 “군의 사기를 높이고 북한에 경고를 보내기 위한 행사”라고 설명했지만, 야당은 “국군의날 행사에 101억 원을 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80억 원이 넘는 세금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남북 간 군사적 위험을 고조한다”고 지적했다. 2명의 병사가 훈련 중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국군의날에 시가행진을 부활시킨 것부터 비상계엄을 기습 선포하기까지, 이 정권의 행보 자체가 전두환 정권을 그대로 베낀 것만 같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선 아파치 헬기가 서울 상공을 누빈 시가행진이 계엄 예행연습 아니었느냐는 억측까지 나온다.
③ 갑작스러웠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인사
지난 8월 12일, 신원식 국방장관이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용현 경호처장이 새로운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됐다. 신 장관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인사였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정권 실세인 김용현을 국방장관에 앉히기 위한 의도적 인사”라는 비판을 쏟아내며, 윤 대통령이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충암고 출신 군 인맥을 동원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김 전 장관은 9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할 의향이 있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 “없다”고 답하고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도 (계엄령을) 솔직히 안 따를 것 같다. 계엄 문제는 지금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너무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로부터 3개월 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직접 건의하면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윤 대통령은 5일 사의를 밝힌 국방부 장관의 면직을 재가하고 신임 국방부 장관에 최병혁 주사우디대사를 지명한 상태다.
④ 윤 대통령, 주요 기념일마다 “반국가세력 척결” 강조
윤 대통령은 이번 계엄령을 야당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선포한 것이라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실제로 계엄 선포 당시 긴급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앞부분에 ‘야당의 횡포’를 일일이 나열한 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야당을 사실상 반국가세력으로 보고 이를 ‘척결’하려 것이다.
이를 위해 계엄법상 군은 입법부 활동에 개입할 수 없는데도 국회에 특수부대를 보냈고, 심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야 주요 정치인을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이라”고 지시했다고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지난 6일 증언했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극단적 인식은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 때부터 드러났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고 추어올린 반면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뜬금없이 “공산주의,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걸핏하면 반국가세력을 언급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불거지자 “반국가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광복절에는 “검은 선동세력에 맞서 자유의 가치 체계를 지켜내려면 우리 국민들이 진실의 힘으로 무장하여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인식 속에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을 ‘척결’할 수단으로 계엄을 고려해 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여권 고위관계자들은 “윤 대통령이 평소에도 ‘확 계엄해버릴까’하는 말을 종종 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김건희 여사도 계엄 선포를 미리 몰랐던 것으로 안다”며 “차라리 김 여사가 미리 알았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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