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현장 투입 전 중간 지휘관이 법률 검토한 첫 사례
법무관 7명 피 토하듯 "절차적 위법성 명백" 진입 만류
"이건 절차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계엄령하의 합동수사본부 수사요원이라 하더라도 형사 입건이 안 된 상태에서 혐의 사실만으로 압수수색을 할 수는 없습니다."
4일 새벽 과천 국군방첩사령부 법무관실. 법무관 7명이 절규하며 '계엄의 부당성'을 외쳤다. 젊은 장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이 진입해서는 안 된다고 결사 반대했다. 그 결과 현장 지휘관은 병력 진입을 늦추며 시간을 끌었고,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책임지는 헌법기관을 지켜낼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 1호가 공포된 지 2시간가량 지나 발생한 일이다.
'법적 판단'을 앞세워 이번 계엄이 불법이라고 항거한 현역 군인들의 활약상이 외부에 알려진 건 처음이다. 이들의 법률 검토 회의는 이번 계엄 상황에서 중간 지휘관이 병력을 투입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위법성 여부를 따진 것으로 확인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윗선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불법 계엄에 동조한 군 지휘부의 행태와 대조적이다. 당시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총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포고령이 적법 절차를 거쳐 작성됐는지 묻고서도 '그렇다'는 대답 한 마디에 아무런 검토 절차 없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포고령을 발표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인터뷰에서 "맞고 틀리고를 떠나 위기 상황에서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고 강변했다. 반면 방첩사 법무장교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법과 절차에 따라 불의에 맞섰다. 그 결과 무도한 계엄을 조기에 끝낼 수 있었다. 한국일보는 9일 복수의 방첩사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했다.
긴박했던 15분… 헌법기관을 지켜낸 젊은 군인의 기개
비상대기 중이던 방첩사 법무관실에 정성우 1처장이 찾아온 건 4일 새벽 1~2시. 이미 방첩사 요원들은 과천 중앙선관위로 이동 중인 상황이었다. 정 처장은 모여있던 7명의 영·위관급 법무관에게 물었다.
"포고령에 근거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선관위의 서버(선거인명부시스템으로 추정)를 복사하는 것은 적법한가. 복사가 안 되면 통째로 들고 나와도 되느냐. 그리고 만약 서버를 복사 또는 확보한 경우 향후 법원에서 위법수집증거로 판단될 소지가 있는가." 방첩사 요원의 선관위 진입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장성급 지휘관의 느닷없는 방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젊은 법무관들은 기본적인 법적 절차도 지키지 못하는 명령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합동수사본부가 정식 개소하기 전에 명령지 없는 구두 명령만으로 방첩사 인원을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불가 △투입된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구체적 혐의사실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형사 입건 안 된 상태로 압수수색은 불가 △만약 압수수색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피수사기관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압수 목록을 작성하지 않으면 위법 수집 증거로 증거 능력 상실. 법무관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위법성을 강조했다. 한 위관급 법무장교는 "방첩사가 계엄령에 이용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피를 토하듯'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법무관들의 법적 검토 의견을 들은 정 처장은 "중단시켜야겠네"라는 말을 남긴 채 법무관실을 나갔다. 이어 현장으로 이동 중인 부대원들에게 "절대 건물에 들어가지 말고 원거리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계엄 해제와 동시에 출동 병력은 부대로 복귀했다. 중간 지휘관과 젊은 법무관들이 가진 15분 남짓한 회의가 헌법기관인 선관위 서버의 불법 유출을 막아낸 것이다. 선관위에 진입한 병력은 경기 안양시에 주둔하고 있는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정보사령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인형, 조직 해체 경험한 요원들의 준법 정신 오판"
방첩사 관계자는 "기본적인 절차도 모르는 군 수뇌부의 지시 때문에 그 책임은 후배 장교들이 지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방첩사 고위 관계자는 특히 "외부에서 온 여 전 사령관이 기무사령부 시절 부대 해체를 경험한 방첩사 요원들의 처절한 트라우마를 과소평가해 '지휘관의 명령에 무조건 따를 것'이란 오판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 대비해 계엄령을 검토했다는 이유로 설립 27년 만에 기무사를 해체했다. 이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거쳐 현재의 방첩사로 이름을 바꿨다. 군 관계자는 "당시 760명의 간부가 조직에서 쫓겨난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방첩사 요원들 사이엔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았다"며 "두 번 다시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부대원들의 결기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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