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무한생산 무한소비' 조장하는 쇼핑의 음모
전 세계 매일 버려지는 휴대폰 1300만 개
기후변화 막으려면 '꼭 필요한 물건만 소비'
환경도 개성도 살리는 '수선 라이프'도 확산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1시간마다 신발 250만 켤레가 생산됩니다. 1시간마다 휴대폰 6만8,733대가 생산됩니다. 1분마다 옷 19만 벌이 생산됩니다."
하늘에서 형형색색의 스니커스 수백수천 개가 쏟아지고, 도심 곳곳의 쓰레기통과 배수로에서는 신상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뿜어져 나옵니다. 지난달 20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지금 구매하세요: 쇼핑의 음모'의 한 장면이에요. '무한생산 무한소비'의 시대,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얼마나 빠르게 '과잉 생산'되고 있는지 통계에 기반한 가상현실로 시각화한 것이죠.
1분마다 19만 벌이라니, 상상이 가시나요. 1년(52만5,600분)으로 환산하면 매년 1,000억 벌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 인구가 올해 7월 기준 약 82억 명이니, 단순 계산하면 모든 인류가 매달 새 옷을 하나씩 가질 수 있는 셈입니다.
현실은 딴판입니다. 소비량이 생산량을 미처 다 못 따라갑니다. 매년 생산되는 의류 10~40%는 팔리지 않고 재고가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매년 의류 폐기물이 80억~600억 벌이나 만들어지고, 1초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이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향하는 것이죠. (관련 기사: 테무에서 샀다가 딱 한 번 입은 옷, 헌 옷 수거함에 버린다고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에요. 다큐에 따르면 매일 1,300만 개 휴대폰이 버려집니다. 전 인류가 2년에 한 번 휴대폰을 교체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애초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옷과 휴대폰이 필요한 걸까요.
"너무 쉬운 쇼핑" 모든 과정서 탄소 배출
정말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게 다큐의 명확한 결론입니다. 온갖 마케팅과 불필요한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술수를 하나씩 까발리며, "여러분은 100% 속고 있다"고 말하죠.
전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웹페이지 UX(이용자경험) 디자이너로 재직했던 마렌 코스타는 다큐에서 상품 구매를 유도하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주문한 물품이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문 앞까지 가게 하는 게 본인 역할이었다며 "쇼핑이 '너무' 쉬워서, 사고 싶다고 생각한 물건에 대해 '더 합리적으로 따져볼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목표였다"고 고백해요. 그는 지금 환경 운동가로 전직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휴대폰에 뜬 광고를 보고 혹해서 샀지만 막상 제품을 받고 보니 몇 번 안 쓰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거나, 광고와 달리 별 효과가 없어 버린 경험이요. 꼭 필요하지 않지만 사면 기분도 좋을 것 같고, 자신감도 뿜뿜 생길 것 같고, 삶이 더 윤택해질 것만 같아서 산 경험이요.
저도 그런 경험이 수두룩했지만, 최근 1년간 기후위기 문제를 취재하다 보니 어느 순간 '구매 욕구'가 팍 꺾였습니다. (고물가도 한몫했고요.) 쇼핑은 제품의 원료 채취, 생산, 수송,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탄소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거든요. 단적으로 패션 산업만 해도 세계 탄소배출량의 10%를 차지하죠.
녹색전환연구소가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생활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도 결국 '내게 정말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자'는 원칙입니다. 전자제품은 최소 7년 이상 쓰고, 옷은 수선해서 오래 입고, 가구도 중고품 빈티지 위주로 사보자는 것이죠.
"명상 같은 수선" 환경에도 마음에도 좋다
'쇼핑 중독'이 실은 외로움과 공허함을 소비로 치유하려는 시도고,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주원인이라는 점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단순 소비에서만 즐거움을 느끼는 삶은 지구에나 지갑에나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마치 명상처럼 고요하고 나만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수선 라이프'를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카페를 하는 30대 김나현씨는 한 손님을 통해서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라는 '힙한' 이름의 태국 치앙마이식 옷 수선·자수 워크숍을 듣게 됐다고 해요. 이후 가방, 양말, 수건 등 '수선해서 다시 쓰기'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카페를 열기 전에 목표했던 '제로웨이스트(생활 쓰레기 배출을 '0'에 가깝게 만드는 것) 실천'은 참 쉽지 않지만 불필요한 소비 자제하기, 옷 오래 입기, 배달 음식 줄이기 등처럼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어요.
그릇, 의류, 전자제품, 가구 등 수많은 물건들을 고쳐 오래 쓰는 습관을 들여온 40대 최연우씨는 "새 물건 사길 꺼려 하는 성격과 가만히 앉아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 거기에 '물건의 생명연장'을 하며 느껴지는 도파민까지 더해져서 '수선'으로 저희 집에 붙잡혀 있는 물건들이 많다"고 말했어요. 쇼핑을 통한 즉각적인 쾌락 대신, 오래도록 물건을 아끼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갈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크다는 것이죠. "수선 과정은 집중력과 고요함을 불러와 '명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는 게 연우씨의 말입니다.
무엇보다 '수선'은 만든 사람의 특별함과 개성을 표출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죠. 고등학생 이은수(17)씨는 과거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주로 옷을 구매했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2'에서 한 패션 디자이너가 빈티지 청바지로 새 옷을 만드는 것을 보고 '빈티지 의류'와 '수선'에 푹 빠졌다고 해요. 마음에 드는 빈티지 의류에 얼룩이나 자국이 있으면 귀여운 패치워크(붙임 조각)로 덮어서 새 디자인으로 탄생시키는 것이죠.
손재주가 없어서 직접 수선할 자신이 없거나, 귀찮다면 훨씬 손쉬운 실천 방법도 있어요. 무심코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시 화면을 끄고,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죠.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해봐도 좋겠고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을 재시동 걸 시점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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