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4·3 희생자' 양천종씨 봉환식
1949년 광주형무소 수감 중 사망·행방불명
뒤늦게 신원 확인돼 가족 품으로
해방 후 혼란기인 1949년 제주에서 검경에 체포돼 형무소에 수감됐다 사망한 아버지가 75년 만에 한 줌의 재로 가족 품에 돌아왔다. 아버지 유해가 담긴 함을 받아 든 94세의 딸은 마른 눈물을 흘렸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17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희생자 양천종(1898년생)씨의 유해를 제주로 운구해, 봉환식과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가졌다.
제주시 연동리 출신인 양천종씨는 4·3사건 당시 가옥이 전소되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으로 피신했다.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하산해 주정공장에서 한 달간 수용생활 후 풀려났으나,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되면서 가족들과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유족들은 같은 해 12월 24일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다. 당시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고자 밭을 처분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놀라운 소식은 지난달 전해졌다. 광주 북구 옛 광주형무소터 무연분묘에서 2019년 12월 발굴된 261구의 유해 가운데 1구가 양씨로 밝혀진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광주형무소 옛터 발굴유해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한 결과, 양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다 건너 타향에서 생을 마감한 양씨는 제주에서 75년 만인 이날 사무치게 그리웠을 딸 양두영(94)씨를 비롯한 유족들과 오영훈 제주지사, 도의회 의원들이 맞이했다. 앞선 16일 제주를 출발한 봉환단은 법무부 광주교정청으로부터 유해를 인계받아 제례를 지낸 후 세종은하수공원에서 화장했다. 시대의 상흔으로 남은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후 2시쯤 김포발 항공편으로 고향땅을 찾았다.
이어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봉환식에는 희생자 유가족과 오영훈 지사, 박호형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 행정안전부 및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 김창범 4·3유족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가족들은 유해에 이름표를 달고 헌화와 분향으로 희생자를 추모했다. 희생자의 손자인 양성홍 제주4·3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어 기쁘다"며 "4·3으로 희생된 모든 행불 희생자가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75년이라는 긴 세월 유가족들의 원통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며 남아있는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작업을 이어갈 것임을 강조했다. 박호형 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은 이상봉 의장을 대신한 추도사에서 “지난 75년간 예고 없는 기다림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동백꽃처럼 희망을 놓지 않은 유가족의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라며 “행방불명된 4·3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에도 희망을 품은 동백꽃이 다시 피어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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