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골든글러브 불발에 "나와 팀이 부족했다"
KBO 수비상엔 "노력 보상받은 것 같아 기뻐"
새 시즌 외부 영입 투수들에 큰 기대
전 소속팀 KIA 우승엔 "LG에 유독 강해...
다음 시즌 상대 전적 바꿔줄 것" 각오
“골든글러브 시상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제가 못 받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어요. (강)민호 형한테 멋지게 꽃다발을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LG의 안방마님 박동원은 담담한 말투로 골든글러브 수상 실패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박동원은 올해 타율 0.272 20홈런 80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10을 기록하며 2011년부터 이어진 ‘양의지(두산)∙강민호(삼성) 체제’를 깨트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박동원 본인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1일 열린 리얼글러브어워드에서 “(강)민호 형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니, 골든글러브는 내가 받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포수 부문 황금장갑은 다시 한번 강민호에게 돌아갔다. 박동원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는 “골든글러브 투표에는 팀 성적도 많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가면 내가 골든글러브를 품을 확률이 더욱 낮아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중에 강민호가 “나는 한국시리즈 갈 테니, 골든글러브는 네가 받아라”라고 말할 때도 “속으로는 ‘민호 형, 한국시리즈 안 보내드릴 게요’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나와 팀이 부족해서 민호 형이 모든 걸 다 가져갔다”며 웃었다.
비록 골든글러브 수상은 불발됐지만, 그는 수비력만큼은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았다. 944.2이닝을 소화하며 수비율 0.996, 도루저지율 25%를 기록해 리얼글러브 어워드 포수상(2년 연속 수상), KBO 포수 부문 수비상 등을 수확했다. 스스로도 큰 자부심을 느끼는 상들이다. 박동원은 “예전에는 수비를 못하는 포수는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며 “신인시절 (수비 때문에) 출전하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이 때문에 수비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 당시의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박동원에게 올해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1990년생인 그는 생애 처음으로 야구 국가대표팀에 뽑혀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 주전 포수로 나섰고, 4경기 6안타(1홈런) 3타점 타율 0.375로 맹활약했다. ‘늦깎이 국가대표’임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비결을 묻자, 그는 “야구는 투수가 유리한 스포츠다. 처음 만난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공이 어떤 궤적으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타격하기가 까다롭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런데 어느 순간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초창기 가을야구 시절(2013∙14∙15시즌)을 떠올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선수처럼 경기에 나서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눈부신 한 해를 보낸 박동원이지만, 팀의 2연패 도전이 무산된 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LG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라며 “내년에는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을 모두 잡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올 시즌을 통해 가능성도 봤다. 그는 “(고우석 함덕주 이정용 등) 2023년 우승 멤버가 대거 빠졌음에도 3위라는 성적을 냈다”며 “물론 팬들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한편으론 LG가 단단한 팀이라는 걸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LG는 다음 시즌에도 마무리 유영찬과 불펜 함덕주(이상 팔꿈치 수술)가 없는 상태로 초반을 버텨야 한다. LG의 안방마님은 외부영입 투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는 “(장)현식이, (김)강률이 형, 최채흥, 심창민이 아프지 않고 버텨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투수들과 전화, 카카오톡으로 짧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하면서 그들이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게 최대한 돕겠다”고 힘줘 말했다.
후배 포수들에게도 박동원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9월 26일 첫 선발로 나선 이주헌이 조언을 구하자 당시 선발인 엘리저 에르난데스의 성향을 곁들여 경기운영 방법을 설명해줬다. 하지만 후배가 물어오기 전에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 박동원은 “모든 선수들이 자기만의 계획을 가지고 있을 텐데, 내가 먼저 조언을 하면 본인이 생각한 걸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다”며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본인의 계획을 실행에 옮겨봐야 스스로 (실패를) 납득할 수 있다. 나는 그저 평소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가 조언을 구해오면 이런저런 점을 얘기해야겠다’고 준비를 하는 위치”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에게 직전 소속팀인 KIA의 통합우승을 바라본 심정을 물었다. 그는 “KIA가 정말 잘했다. 특히 우리에게 유독 강해서 더 힘들었다”며 웃은 뒤 “내년에는 상대 전적을 바꿔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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