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 앓다 병원서 사망… 향년 98세
정계·스포츠계에도 막강한 영향력
'야스쿠니 참배' 일본 정치인 비판도
일본 언론계를 대표하며 정계·스포츠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와타나베 쓰네오 일본 요미우리신문그룹 대표이사 겸 주필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요미우리신문은 와타나베 주필이 이날 오전 2시쯤 폐렴을 앓다 도쿄 도내 병원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까지 정기적으로 출근해 임원 회의 등에 참석했으나, 이달 들어 몸 상태가 나빠져 병원 치료를 받아 왔다고 신문은 전했다.
고인은 요미우리를 일본 최대 신문사로 키운 언론인이다. 1926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대를 졸업한 뒤 1950년 요미우리에 입사했다. 워싱턴 지국장과 편집국장, 논설위원장 등을 지냈고 1991년 요미우리신문 사장 겸 주필에 올랐다. 2004년 회장으로 취임했고, 2016년부터는 다시 대표이사 겸 주필로 활동해 왔다.
특히 사장 부임 이후인 1994년,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신문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부 발행'이라는 기록을 썼다. 2001년 1월에는 역대 최다 부수인 1,031만91부를 발행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고인은 1999년부터 4년간 일본신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언론계 보도 윤리 기준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협회는 2000년 "기사 보도 시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새 신문윤리강령'을 제정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언론 사업을 통해 사회문화에 공헌한 신문인에게 수여하는 '일본 신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인 2008년에는 일본 정부가 '보도 문화 발전 기여'를 이유로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고인은 언론계를 넘어 정계 및 스포츠계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해 '일본 전후(戰後)의 괴물'로 불렸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베 신조 등 역대 총리들과 가깝게 지냈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 막후에서 정권 개각이나 총리 인선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9월 아베 전 총리가 사퇴하자, 자민당 내 계파 지도자들을 움직여 후쿠다 야스오를 차기 총리에 올리기도 했다. 또 1996년부터 약 8년간 일본 프로야구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로 활동했고, 일본 국기로 불리는 스모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요코즈나를 심의하는 위원회의 위원장도 지냈다.
한일 관계 발전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 '과거사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며 정치인의 참배를 비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2006년 아사히신문 와카미야 요시부미 논설주간과의 대담에서 고인은 "야스쿠니 신사 본전 옆에 유슈칸(신사 경내 전쟁박물관)이 있는 것은 이상하다"며 "군국주의를 부채질하고 예찬하는 전시품이 있는 박물관을 야스쿠니 신사가 경영하는 셈이고, 총리가 이런 곳에 참배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김종필(1926~2018) 전 총리와의 인연도 있다. 1950년대 정치부 기자 시절 당시 일본 정계 거물인 오노 반노쿠의 담당 기자로 활동하며 신임을 얻었던 고인은 1960년대 초 박정희 군사정권의 '2인자'였던 김 전 총리를 당시 집권 자민당 부총재인 오노와 연결해 줬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의 '한일 공동 여론조사' 역시 고인의 사장 재임 시절인 1995년 시작됐다. 매년 여름 두 신문사가 공동 실시해 그 결과를 함께 보도하고 있는 이 여론조사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상대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고인은 위대한 저널리스트였다. 명복을 빈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중 (와타나베 주필로부터) 조언과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이라고 교도통신에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