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 힌턴 로원 헬퍼- 1
미국 노예제의 비인도주의적 실상을 이야기로 고발한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1852년 출간 첫해에만 3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북부의 남북전쟁(1861~65) 명분과 사기 진작에 기여했다.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스토를 만나 “당신이 이 위대한 전쟁을 촉발시킨 (그 책을 쓴) 아담한 여성이군요”라고 인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북부와 달리 당시 대다수 남부인에게 저 책은, 예나 지금이나 극단의 시대를 지배하는 흑백의 논리에 따라 “남부 사정에 무지한 북부 양키 목사의 딸이자 신학자 마누라가 쓴 감상적인 쓰레기” 정도의 평가 이상을 받진 못했다.
남부인들로 하여금 노예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 것은, 남부 토박이인 힌턴 로원 헬퍼(Hinton Rowan Helper, 1829.12.27~1909.3.9)의 1857년 논픽션 ‘임박한 남부의 위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The Impending Crisis of the South: How to Meet It)’였다. 그는 책에서 “게으르고 거들먹거리는” 노예소유주들로 인해 남부가 북부에 비해 경제적-문화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며 “노예제는 인류 경제 사전에 수록된 가장 증오스럽고 끔찍한 단어”라고 규정했다.
그는 1850년 미국 인구산업총조사를 근거로 1840년 이후 10년 사이 벌어진 북부와 남부의 경제적 격차와 문맹률 등을 대비했다. 즉 1840년 미국 전역 철도 선로의 44%를 점하던 남부 선로는 50년에 26%로 격감했고, 제조업 생산량도 20%에서 18%로 줄었다. 남부가 자랑하던 농업 생산량에서도 50년 북부가 3억5,200만 달러로 남부(3억700만 달러)를 추월했다. 그는 애덤 스미스식의 북부 자유노동과 달리 “최대한 많이 먹고 일은 덜하려는 노예"에 의존한 경제와 그 현실에 안주한 노예소유주들의 나태함이 쇠락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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