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아닌 민주-반민주 문제
여당이 궤변으로 계엄 두둔해서야
쿠데타 불씨 진화할 책임 다해야
차분함을 유지한 채 읽을 수가 없다. 비상계엄 직후 국민의힘 의원 카톡방 말이다. 지침을 달라는 숱한 요청에도 추경호 전 원내대표는 한 번도 직접 나서지 않았다. 계엄 30분이 지나서야 의원총회 소집 문자가 발송됐다. 그는 이후 1시간에 걸쳐 의총 장소를 국회, 당사, 국회 예결위장, 당사 3층으로 바꾸었고 의원들은 ‘국회에 못 들어간다’ ‘장소가 어디냐’며 우왕좌왕했다. 본회의장으로 오라는 원외 한동훈 전 대표의 전언은 무시됐다. 결국 당사에 모인 여당 의원 50여 명은 담 넘은 190명 의원들의 계엄 해제 가결을 뉴스로 들었다. 야간투시경과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맨몸의 시민이 군용차를 막아서는 것을 목격하고도, 불법 계엄 해제가 자기 임무라는 걸 생각조차 안 한 건가.
국민적 공분은 이제 유혈사태를 야기할 뻔한 위험천만한 대통령보다, 온갖 궤변으로 그를 감싸고 내란을 부정하는 여당에 집중됐다. 의원들은 의총에서 “탄핵이 누구 때문이냐”고 한 전 대표를 다그쳤다는데 누구 때문이냐니? 국민에게 총 겨눈 대통령 때문이다. 그를 즉각 사퇴시키지 못한 여당 때문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임명이 “국가원수의 권한”이라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들고 와 공분의 새 장을 연다. ‘대통령이어서 정권 찬탈을 위한 내란은 불가능하다’(홍준표 대구시장)거나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여서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다’(윤상현 의원)라는 궤변이 이미 찬란했다. 헌법학자 절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논리다. 헌법기관이 이토록 무책임하고 뻔뻔할 수는 없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야 대응 일지>
12월 3일
밤 10시23~28분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밤 10시42분 더불어민주당, 국회로 의원 긴급 소집
밤 10시49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비상계엄 선포 잘못… 국민과 함께 막겠다”
밤 10시56분 이재명 민주당 대표,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계엄 선포”
밤 11시3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비상 의원총회 소집. 이후 4일 오전 0시 8분까지 의총 장소를 국회→당사→국회 예결위장→당사 3층으로 변경
12월 4일
오전 0시7분 계엄군, 국회 경내 진입
오전 0시8분 우원식 국회의장 긴급 기자회견 “국회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 “모든 국회의원 본회의장으로 모여라”
오전 0시30분 국민의힘 의원 50여명 당사에 모임
오전 0시39분 계엄군, 국회 본청 창문 깨고 진입
오전 0시47분 국회 본회의 개의
오전 1시1분 국회 비상계엄 해제 안건 상정
오전 1시3분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가결
오전 5시30분 윤 대통령, 비상계엄 해제
계엄은 해프닝이나 경고가 아니었다. 내란은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군인 1,500명과 경찰 4,200명이 국회와 선관위에 진입했고 군은 실탄 1만 발, 차량 107대, 블랙호크 헬기 12대를 동원했다. 계엄 당일 내란 실행 기지가 판교 정보사 100여단에 세워졌다. 문상호 정보사령관, 김봉규 정보사 심문단장, 구삼회 2기갑여단장, 방정환 국방부 정책기획차장 등이 이곳에 모였고, 두 달 전 선발된 정보사 특수임무부대(HID) 요원들이 대기했다. 내란 세력은 정치인 체포조를 가동했고, 선관위 직원들을 수방사 B-1 벙커로 수송해 심문할 계획을 세웠고, 전차·장갑차를 동원하려 했던 것이다. 민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설계하고 그의 사조직이 실행한 엄청난 일이다. 다행히 실패했다고 해서 “내란 아닌 소란”(석동현 변호사)일 수는 없다.
“법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를 무시하고 탄핵심판 서류 수령마저 거부했다. 체포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이 수두룩한데도 석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체포의 ‘체’자도 얘기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데도 여당이 '이재명 대통령 막기'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또한 내란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에 거부권을 “숙고하겠다”며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우리는 내란 범죄를 엄벌하고 그 뿌리인 군 사조직을 없애서 쿠데타 불씨를 완전히 진화해야 한다. 공직자들이 할 일을 하고 제도가 작동해야 한다.
이는 진보-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반민주의 싸움이며 공화국과 반사회세력의 갈등이다. 내란에 대한 대응 시험이다. 김상욱 의원의 진단대로 “윤 대통령은 보수가 아니라 극우주의자”이며 그를 옹호하는 국민의힘은 “극우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극우 집단은 더 커졌고 국민의힘은 더 뻔뻔해졌다. 하지만 시민들도 더 단단해졌다. 탄핵 집회 현장에서 한 여성은 이런 피켓을 들었다.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 몇 년이 걸려도 반드시 부서질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갈고 있는 국민을 피할 수 없다. 선택은 두 가지다. 절치부심하여 보수 가치를 회복하거나, 극우정당으로 연명하다가 소멸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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