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된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
이준석 몰아내고 '비상 상황' 만들기
외부 인사 한동훈, 윤-한 갈등 촉발
탄핵 국면 권영세 비대위 순항할까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국민의힘이 또다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당 출범 이후 6번째, 윤석열 정부 들어선 5번째 비대위입니다. 정당은 위기 상황에 '소방수' 역할을 맡기기 위해 비대위 규정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도부가 수차례 바뀌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온 여당에 비대위는 어느새 '뉴노멀'이 된 모양새입니다. 초유의 12·3 불법 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국면을 맞아 이번엔 비대위가 조기 대선까지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차기 리더십을 세우기까지 지도부 공백을 막는 임시 기구가 어쩌다 이렇게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됐을까요. 국민의힘은 수직적 당정 관계, '윤심'에 따른 지도부 교체로 집권 초기부터 이례적인 비대위 체제로 운영됐습니다. 그동안 스쳐간 비대위 면면을 돌아봤습니다.
이준석 축출하고 '비상 상황' 선포한 與
국민의힘은 정권 출범 80여 일 만에 비대위로 전환했습니다. 2022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자 친윤석열(친윤)계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몰아내 '비상 상황'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주호영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주 의원은 "분열된 조직은 필패한다"(8월 9일 취임 기자회견)며 '혁신형 관리 비대위'를 주장했지만, 계획은 17일 만에 좌초됐습니다.
서울남부지법이 이 전 대표가 제기한 '비대위 출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겁니다. 재판부는 "비대위를 설치할 정도로 당이 비상 상황에 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대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까지 참석한 연찬회에서 당정 결속을 다진 직후 나온 결정에 당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분주히 '비대위의 비대위' 구성에 나섰습니다.
안정적 운영을 명분으로 친윤계 맏형 격인 정진석 비대위원장을 선봉에 내세웠습니다. 국회부의장직을 내려놓고 지휘봉을 잡은 그는 '관리형 비대위'로 6개월간 당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비대위에 관여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본인을 만들어 준 정 위원장에 대해선 크게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안정적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윤심에서 마냥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기 당대표를 선출할 전당대회 룰을 당원투표 100%로 바꿔 대통령실 입맛에 맞는 당권주자를 세웠고, 친윤계와 비윤계 사이 갈등은 커져갔습니다.
총선 앞 한동훈호 출범…4개월 만 좌초
22대 총선을 앞두고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국민의힘은 재차 휘청였습니다. 김기현 대표가 압박 끝에 사퇴하면서 '한동훈 비대위'가 막을 올렸습니다. 총선을 4개월 남긴 시점에서 공천 등 전반을 책임질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화답한 것입니다. 친윤 핵심도 한 위원장을 밀면서 '한동훈호' 역시 초반에는 윤심이 세운 비대위로 출발했습니다. 한 위원장은 평균 나이 43.8세로 비대위를 꾸려 쇄신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총선을 이끄는 한 위원장이 정권 심판론에 부딪혀 연일 엇박자를 내면서 '윤-한 갈등'이 고조됐습니다. 대야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던 한 위원장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에 "국민 눈높이"를 거론하면서 기류가 바뀌었습니다.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이 대통령실과의 불편한 관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한 위원장은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는 벗게 됐지만, 윤 대통령과는 이때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결국 한 위원장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여당은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8단)로 불리는 황우여 비대위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이처럼 4차례의 비대위를 지내는 동안 국민의힘은 눈앞에 놓인 위기 수습에만 급급했을 뿐 매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대위를 반복하면서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기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당 비대위는 '여당 내 야당' 격인 인물을 간판으로 내세워 대통령과 각을 세우거나, 파격적 조치로 혁신에 초점을 맞춰 돌파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과거 유일하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대표적입니다.
탄핵 국면에서 집권여당으로서의 동력을 상실한 지금, 국민의힘은 부정할 수 없는 '비상 상황'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벚꽃 대선'이 현실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내 분열을 최소화하고 등 돌린 민심을 다시 얻어야 하는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과연 권영세 비대위는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까요? 윤석열 정부 들어 파란만장한 보수정당의 역사에 어떤 자취를 남길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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