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조언 오간 회식과 통근
업무와 관련 있어 업무 연장
회사 직원들과 모임 후 귀갓길에서 발생한 성추행도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근무시간·공간 외에 발생한 사건이라도 업무 관련성이 있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단독 심웅비 판사는 A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공무상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양측이 항소하지 않아 지난달 20일 판결이 확정됐다.
지방 공무원이던 A씨는 지난해 초 직장 상사 B씨로부터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당했다. 사건은 B씨가 '다른 팀 사람들과도 알고 지내면 좋다'며 마련한 저녁 자리 이후 귀갓길에서 발생했다. 인사혁신처는 성추행 피해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며 A씨가 신청한 공무상 요양을 거절했다. 해당 저녁 자리는 공적 회식이 아니고, B씨의 개인적 일탈 행위로 인한 피해라서 A씨의 질병이 공무와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심 판사는 인사혁신처 판단과 달리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심 판사는 "직장 내 성희롱은 장소적으로 직장 내, 시간상으로 업무시간 중으로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이 사건 질병과 공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해당 모임을 회식으로 인정하지 않은 판단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먼저 제안해 마련된 자리인 데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거절할 수 없었던 피해자의 사정과 모임 성격 등을 고려했다. 심 판사는 "저녁 자리에선 업무 관련 조언과 업무 소개 등이 포함된 대화가 오갔다"면서 "업무의 연장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봤다.
근무시간 이후에 발생했더라도 업무 관련성을 배제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봤다. 심 판사는 "통근 행위는 노무 제공의 의미에서 업무와 밀접한 관계"라면서 "부서 회식 후 귀가하는 길에 발생한 상사의 성추행도 업무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분이 없었다는 전후 사정과 피해 이후에도 근무하며 피해자가 받은 스트레스 등을 고려했다. 심 판사는 "직장 내 성추행으로 인한 정신질환은 직장 내 인간관계에 내재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라면서 "공무와 인과관계가 있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산업재해 사건을 주로 변호하는 법무법인 마중의 김용준 변호사는 "직무와 관련된 사람이 위법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 어디까지 공무상 재해로 확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을 내린 판결"이라면서 "업무 외적인 시간과 공간이더라도 위법성을 기준으로 재해 기준을 확장해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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