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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전문 배우' 85세 박근형 실직 가장 됐다…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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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전문 배우' 85세 박근형 실직 가장 됐다…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입력
2025.01.07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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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이어 '세일즈맨의 죽음' 윌리 로먼 역
"가족 붕괴와 가장의 소외, 인간의 숙명"
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서 개막

배우 박근형은 "희곡으로서 최고 명작이라고 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에 학생 시절부터 출연하고 싶었는데 2023년에야 처음 출연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류기찬 인턴기자

배우 박근형은 "희곡으로서 최고 명작이라고 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에 학생 시절부터 출연하고 싶었는데 2023년에야 처음 출연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류기찬 인턴기자

'어제 우리집에서 했던 대화가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재연되고 있어 눈물이 났다.'

2023년 5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관람 후기 중 하나다. 1930년대 미국 경제대공황 시기, 실직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60대 가장의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 현실과 겹쳐 보인다는 관람평이 유독 많았다. 발표된 지 70년이 훌쩍 지난 아서 밀러 희곡이 원작인 연극이 연일 매진되며 큰 사랑을 받았던 주된 배경에는 배우 박근형(85)이 있다. '회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박근형은 회사에서 해고 통지를 받고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되는 '윌리 로먼' 그 자체였다.

박근형이 연기 인생 60주년 기념작이자, 7년 만의 무대 복귀작으로 선택했던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하는 공연 연습에 한창인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근형은 "가족 붕괴와 가장의 소외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공연의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그는 "나와 가족이 잘 되길 바라는 희망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변화하는 사회 구조와 인간관계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녀에게도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 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삶은 끊임없이 반복된다"며 "내게도 가족을 억압하고 독선적으로 결정하는 가장의 모습이었던 시절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형은 1963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 영화로 대중에 친숙하지만 "원래 연극하던 사람"이다. 1958년 연극을 시작했고, 1964년부터 3년간 국립극단 간판 배우로도 활동했다. 방송 데뷔가 아닌 연극 출연을 기준으로 하면 연기 경력이 70년 가까이 되는 셈. 그런 그에게 '세일즈맨의 죽음'은 "늘 참여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던 작품"이었다.

그는 "학생 시절에는 큰아들 비프 역을 꿈꿨다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윌리를 원하게 됐다"며 "제작사는 회장 연기를 많이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으니 나름 모험을 한 것이지만 무대에서 다양한 연기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극은 캐릭터를 인간 내면에서 끌어내 극대화하기 때문에 관객마다 각 역할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연극이야말로 K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의 밑바탕"이라고 믿고 있는 그는 정부 차원의 희곡 문학 육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배우들이 무대 훈련과 자기 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대극장용 신작 희곡이 더 많이 발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 세계 구축한 배우로 기억되고파"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습 중인 배우 박근형. T2N 미디어 제공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습 중인 배우 박근형. T2N 미디어 제공

박근형은 2023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무대에 복귀한 뒤 곧이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도 출연했다. 특히 같은 80대 배우인 신구, 박정자와 함께 출연한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유난히 젊은 관객이 환호했다. 그는 "최근 무대 경험을 통해 한국의 젊은 층은 좋아하는 일에는 한없이 마음을 내주는 이들임을 깨달았다"며 "인간의 정도를 보여주고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예술가로서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시간이 빨리 가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예술가에게 은퇴란 없다"는 박근형은 창작극을 비롯해 몰리에르의 '수전노'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등을 희망작으로 꼽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서 뛰어다니며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대에 앞장서 자기 세계를 구축한 배우로 기억되고 평가받고 싶어요. 정신세계라는 게 수학적 계산은 아니니까 오래오래 무대에 서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걸 표현했을 때 공감을 많이 받는 배우가 돼야겠죠."

배우 박근형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배우 박근형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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