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지난해 12월 26일 인공지능(AI) 기본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추진하는 AI 기본법 제정안은 국가인공지능위원회에서 3년 간격으로 AI 기본계획을 세워 AI 발전을 지원하고 부정적 영향을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빠져 두루뭉술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AI 기본법을 보면 전 세계 AI 진영의 판도를 보는 것 같다. 지금 전 세계 AI 진영은 크게 두 갈래, 효과적 가속주의(effective accelerationism, e/acc)와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로 갈라져 논쟁을 벌이고 있다. 효과적 가속주의는 기술 발달을 빠르게 촉진해 기아, 환경오염 등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그 중심에 AI가 있다. 규제 없는 AI 개발을 통해 인류를 번영시킬 수 있다는 효과적 가속주의는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 웹브라우저 창시자 마크 앤드리슨 등 정보기술(IT) 업계 유력 인사들을 중심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종교처럼 확산되고 있다.
반면 효과적 이타주의는 인류 발전을 위해 기술 개발을 하더라도 장기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로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인류 발전에 공헌하도록 기술 개방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두 가지 주장은 모두 공감 가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담고 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 분명히 말하기 힘들다. 효과적 가속주의가 주장하는 무한 기술 경쟁은 기술 발달을 촉진시키지만 최악의 경우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기술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반면 효과적 이타주의는 대의명분은 좋지만 경쟁을 제한해 기술 발달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경향은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25'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올해 CES 주제는 '기술로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변화에 뛰어들라'는 뜻의 'Connect. Solve. Discover. DIVE IN'이다. 그렇다 보니 AI를 접목한 첨단 이동수단과 가전, 디지털 건강관리 기술 등이 얼마나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줄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자리 위협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늠할 수 있는 장이 될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2023년 6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타임지는 '인류의 종말'(THE END OF HUMANITY)이라는 표지 그림에서 humanity의 A와 I를 다른 색깔로 강조했다.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의도가 명확한 그림이다.
AI 기본법은 이제 첫발을 떼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시행령에 담을 내용들이다. 중요한 것은 AI 기본법이 효과적 가속주의와 효과적 이타주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다. 법은 진흥과 규제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산업을 발전시키면서도, 사람들에게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기업들은 무한경쟁에서 뒤처지면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적극적인 진흥책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 발전만 고집할 경우 부작용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몫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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