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비시장 돌진' 운전자 당시 기억 못해
"의료 정보 기반으로 운전 능력 평가를"
전문가 "초기 치매, 가족 역할이 중요"
'깨비시장 돌진' 사고로 사망자 1명 포함 13명의 사상자를 낸 70대 운전자가 과거 치매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치매 환자도 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운전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제도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12월 31일 대형 승용차를 몰다가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을 덮쳐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김모(75)씨를 수사하고 있다. 사고 당시 김씨 차량의 속도는 시속 70~80㎞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고는 차량 결함이나 단순 운전 미숙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김씨 가족들로부터 "김씨가 2년 전 처방받은 치매 약이 다 떨어지자 열 달간 복용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는 2022년 2월 양천구보건소 산하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가 의심되니 치료를 받으라'는 권고를 들었는데 1년 9개월이 지난 이듬해 11월에야 서울 한 병원에서 치매 판정을 받았다. 이때 처방받은 석 달치 약이 떨어지자 복용을 중단한 상태에서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 발생 1주일이 지난 7일까지도 김씨는 자신이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운전대 못 잡게 할 3번 기회 다 놓쳤다
김씨가 최초 치매 소견을 받은 뒤 사고를 낼 때까지 2년 10개월간 운전 능력을 검사할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김씨는 치료 소견을 듣고 7개월이 흐른 2022년 9월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았는데 무사 통과해 1종 보통면허를 갱신했다. 65세 이상 75세 미만의 경우 5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적성검사는 시력 등을 측정하는 사실상의 신체검사라 치매 의심 증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2023년 11월 치매 판정을 받은 후에도 걸러내는 데 실패했다. 치매는 운전면허 결격 사유라 기존 면허 보유자에게 발병하면 의사와 교통 전문가가 운전 가능 여부를 직접 판별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대상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장기요양등급을 부여받은 환자로 한정돼 있다. 이 등급은 보건당국 심사를 거쳐 '6개월 이상 혼자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된 경우'에만 부여된다. 초기나 중기 치매 환자는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75세 이상 운전자의 경우 3년에 한 번 실시되는 적성검사 때 치매선별검사 도구로 활용되는 인지선별검사(CIST)를 받아야 한다. 검사 당시 72세였던 김씨에겐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미국처럼 의료 정보 활용해야"
치매 운전자 거름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촘촘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중증도에 따른 운전 금지 기준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은 치매 증상 등을 보이는 운전자의 가족이나 담당 주치의가 관계 당국에 신고하는 걸 법적 의무화하는 '제3자 신고제'를 운영 중이다. 미국의 일부 주(州)도 의사가 진단을 통해 운전을 계속해도 될지 여부를 판단해 미국 차량국(DMV)에 보고하게 돼 있다. DMV는 이 소견을 토대로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이호진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시스템이 잘 돼 있으니 객관적인 의료 정보를 토대로 당국이 고령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여건은 갖춰져 있다"고 짚었다.
제도 도입과 별개로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김씨의 경우 보건소에서 치매 치료 권고를 받고 실제 약 처방을 받기까지 1년 9개월이나 걸렸다. 최성혜 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은 "치매 환자들은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인정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며 "가족이 설득해 자동차를 처분한다든지 등 도움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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