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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경에 심상을 녹이다... "한국적 풍경화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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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경에 심상을 녹이다... "한국적 풍경화란 이런 것"

입력
2025.01.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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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회화 대가 박광진 '자연의 속삭임'
한국적 풍경 포착한 대표작 117점
서울시립미술관서 2월 9일까지

박광진의 '향원정(1965)'.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박광진의 '향원정(1965)'.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초가을 숲에 안긴 고궁 풍경은 60년이 지나도록 아늑한 정취를 간직했다. 화가 박광진의 '향원정(1965)' 속 붉은 갈색 정자를 뒤로한 채 우거진 나뭇가지와 연못을 뒤덮은 물그림자가 부드러운 빛으로 일렁인다. 박물관 장식장에 놓인 반가사유상, 토기, 청동 정병을 섬세하게 묘사한 '국보(1957)'나 시대를 증언하는 듯 1950년대 스산한 거리 풍경을 그린 '보문동 전당포(1956)' '담배가게(1956)'도 전시장 초입에서부터 눈길을 잡았다. 올해 구순을 맞은 화가는 평생 향토적인 소재에 꽂혀 은은하고 감각적인 자연미를 재현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 박 작가의 풍경화·정물화 117점이 전시됐다. 기증작 작품전 '박광진: 자연의 속삭임'이다. 추상화 열풍 속에서 만나는 구상 대가의 작품이 신선하면서도 반갑다.

대학 4학년 나이로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국보(1957)'.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대학 4학년 나이로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국보(1957)'.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를 그리다

박광진의 '당인리발전소(1976)'.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박광진의 '당인리발전소(1976)'.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박 작가는 한국 현대 미술 1세대 작가다.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 홍익대 서양학과에 입학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구상미술 화가들이 주축이 된 '목우회'의 최연소 창립 회원으로 참여해 고전주의 미학에 근거해 미술의 토대를 다지고자 했다. 1960년대 작업 초기에는 전통 궁궐이나 도심 풍경을 소재 삼아 그리다 점차 주변 자연으로 확장하면서 자연주의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전시 제목인 '자연의 속삭임'도 "평생 자연의 소리를 화폭에 어떻게 옮길지 고민했다"는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전시는 박 작가가 3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193점이 토대다. 대표작과 미술관 소장품 중 선별한 117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박 작가의 첫 유화 작품인 '창경원입구(1952)'부터 제주도 자연을 소재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근작까지 망라한 회고전 성격의 전시다. 가장 먼저 만나는 '탐색: 인물, 정물, 풍경' 섹션에서는 한국 구상미술의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이봉상, 손응성, 박수근의 영향을 받아 그린 전통적인 구상 작품을 선보인다. 이어지는 '풍경의 발견' '사계의 빛'에서는 한국의 자연과 빛을 특유의 색채 감각으로 표현한 작가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박광진의 '내설악 설경(1985)'.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광진의 '내설악 설경(1985)'.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풍경에 녹아든 심상...구상의 재발견

박광진의 '노랑오름(2001)'.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박광진의 '노랑오름(2001)'.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마지막에 만나는 '자연의 소리' 시리즈는 전시의 백미다. 박 작가는 사실적 화풍과 섬세한 묘사로 이름을 알렸지만 근래에는 실경(實景)에 추상적 요소를 가미한 독창적인 작품 스타일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풍경과 빛을 탐색하던 작가에게 가장 영감을 준 곳은 제주의 자연이었다. 제주에 머무르며 굵직한 선과 색만으로 자연미를 압축하는 내공을 선보인 것이 2000년대부터다. 원경의 형태는 구상 회화 방식으로 묘사하면서 근경은 뭉개어 덩어리지듯 표현한 '노랑오름(2001)'도 이 시기에 완성됐다. '자연의 소리' 연작에는 배경을 생략한 채 중심 소재인 억새를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자연의 다름과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세로선을 넣는 등 표현 실험이 여럿 등장한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한국 구상회화의 전개에 기여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함으로써 구상 미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며 "한국 구상회화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논의가 촉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9일까지.

박광진의 '자연의 소리' 시리즈-'김녕고목(2002)'.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박광진의 '자연의 소리' 시리즈-'김녕고목(2002)'.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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