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세뇌 피해자, 항거불능 상태" 인정
감형 항소심·2차 가해 등 아쉬움 남겼지만
메이플 "다른 피해자와도 끝까지 함께할 것"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를 악용해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 정명석에게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정씨를 공개 고발한 피해자 메이플은 "정의가 진짜 있다는 걸 확인했다"면서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아쉬움도 드러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9일 준강간·준유사강간·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위치 추적 전자장치 15년 부착과 신상정보 고지·공개 10년, 아동·청소년 등 관련기관 취업제한 10년 명령도 함께 확정됐다.
정씨는 2018년 2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충남 금산군 월명동 수련원 등에서 23차례에 걸쳐 홍콩 국적의 메이플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고, 호주 국적의 신도인 에이미와 한국인 여신도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들을 무고한 혐의도 적용됐다.
메이플은 2022년 3월 기자회견을 열어 정씨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한 뒤 그를 고소했다. 정씨는 2009년에도 다른 여성 신도들을 추행하거나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공분을 샀다. 그의 범행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통해 공개돼 큰 관심을 끌었다.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를 냈지만 수사와 재판은 더뎠다. 수사기관은 끊임없이 메이플을 향해 "피해 당시 느낌이 어땠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고, JMS 신도들의 조직적인 수사 방해와 2차 가해도 이어졌다. 정씨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수사·재판 지연 전략을 폈다. 피해자들을 돕는 김도형 단국대 수학과 교수는 "정씨의 구속영장이 여러 차례 반려돼 메이플이 고소를 포기하려고 홍콩으로 출국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재판의 최대 쟁점은 종교적으로 세뇌된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항거불능 상태에 놓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일관되게 종교적 세뇌도 항거불능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정씨가 감형되면서 피해자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항소심은 1심의 징역 23년이 양형위원회 권고 범위(징역 4년~19년 3개월)를 크게 벗어났다며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에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원인을 정씨에게만 돌릴 수 없다고 봤다. 거듭된 진술을 요구한 수사기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단 취지다.
김도형 교수는 그러나 "항소심에서 (메이플이 성폭행 현장에서 녹음한) 파일을 등사해 달라는 정씨 측 요구를 재판부가 들어줘 (신도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2차 가해가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파일은 신도들 사이에 퍼져 메이플을 향한 2차 가해 도구로 사용돼 검찰이 신도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항소심은 결국 일부 파일에 대해 원본 파일과의 동일성·무결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메이플은 "17년으로 상처가 보상되진 않겠지만 앞으로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는 것을 보장할 수 있게 됐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정씨에 대한 단죄는 끝나지 않았다. 정씨를 고소·고발한 피해자만 22명이다. 이 중 메이플 등 3명의 피해자에 대한 법원 판단만 이번에 확정됐다. 정씨는 여성 신도 2명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도 기소돼 1심이 진행 중으로, 지난달 피해자 8명에 대한 추가 기소 사건이 이 재판에 병합됐다. 김 교수는 "수사·재판이 지연될수록 중간에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나올 수 있어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메이플 역시 다른 피해자를 향해 "(나처럼) 끝낼 수 있으니 힘내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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