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 대통령 5명 한자리… “이례적 화합”
바이든 “훌륭한 인격이 권력 이상” 추도
카터 손자 “인기 없었을 때도 원칙 고수”
미국 제39대 대통령으로 재임(1977~1981년)하며 현직 시절은 물론 퇴임 후에도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엄수됐다. 전현직 미국 생존 대통령 모임인 ‘대통령 클럽’이 카터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소집됐고, 평소 돌출 언행을 일삼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도 이번에는 튀지 않았다.
이날 카터 전 대통령 장례식은 2018년 12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별세 이후 약 5년 만에 국가장례식으로 치러졌다. 살아 있는 역대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 5명이 모두 참석해 지난달 29일 100세를 일기로 떠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앙숙’ 트럼프·오바마, 상당 시간 대화
대통령 클럽 멤버 중 트럼프 당선자 부부가 가장 먼저 입장해 앞에서 두 번째 열 맨 오른쪽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다음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들어와 트럼프 당선자의 오른쪽 옆에 앉았다. 미셸 여사는 영부인 중 유일하게 참석하지 않았다. 서로를 향해 독설을 쏟아내던 트럼프 당선자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장례식 시작 전 상당 시간 대화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둘째 열 오바마 전 대통령 우측에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그 옆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각각 앉았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 부부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와 함께 맨 앞줄에 착석했다.
대통령 클럽에 장례식 복식 규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멤버 모두 옷차림새가 비슷했다. 한결같이 검은색이나 청색 계열 수트와 넥타이를 착용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는 늘 짙은 파란색 수트에 밝은 빨간색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하던 트럼프 당선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그들의 통일된 복장(coded dress)은 권력의 연속성을 나타낸다”며 “트럼프도 미국 대통령이라는 아주 배타적인 클럽의 전통적 일원으로 보이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는 의미”라고 논평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뒤 대통령 클럽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은 장례식 전에 비공개로 만났는데, AP통신은 “극도로 분열된 미국 정치에서 목격된 이례적인 화합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증오 없이 ‘권력 남용’에 맞서야”
장례식은 성조기에 싸인 고인의 관이 오전 10시쯤 대성당 앞에 도착하며 예포 21발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 7일 워싱턴에 도착한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전까지 국회의사당에 안치돼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카터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자신이 그를 지지했던 이유를 “지미 카터의 변하지 않는 인격(character), 인격, 인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카터와의 우정을 통해 훌륭한 인격(strength of character)이 직책이나 권력 그 이상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증오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장 큰 죄악인 권력 남용에 맞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오늘 많은 사람은 그를 지나간 시대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미래를 잘 내다봤다”며 카터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생전에 바이든 대통령에게 ‘(내가 죽으면) 직접 추도사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럴드 포드(2006년 별세) 전 대통령과 월터 먼데일(2021년 별세) 전 부통령이 생전 작성해 둔 추도사는 두 사람의 아들이 각각 낭독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1976년 대선에서 카터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으나 이후 친구가 됐고, 먼데일 전 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 재임 때 부통령을 지냈다.
추도사 남기고 먼저 떠난 포드... “재회 기대”
포드 전 대통령은 아들 스티븐 포드가 대독한 추도사에서 “카터와 나는 짧은 기간 라이벌이었지만 이는 오랜 우정으로 이어졌다”며 “재회를 기대한다. 우리는 서로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정직과 진실함은 지미 카터라는 이름과 동의어였다. 정직은 그저 이상적 목표가 아니라 그의 영혼 자체였다”는 발언에서 보듯, 존경과 애정이 가득한 추도사였다. 미국 정치인 특유의 ‘조크’도 넘쳐 카터 전 대통령의 떠나는 길을 유쾌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카터 전 대통령 손자인 제이슨 카터는 조부에 대해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었을 때도 자신의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있었다”고 회상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한 친(親)환경 정책, 인종주의 종식 노력 등을 거론하며 “그는 첫 밀레니얼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가 더 빛난 대통령’으로 꼽힌다. 1980년 11월 대선 패배로 재선에 실패했고 이듬해 1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나, 그 이후 더 적극적인 평화·인권 증진 활동을 펼쳐 업적이 재평가됐다. 고인은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옮겨졌고, 2023년 별세한 부인 로절린 여사 옆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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