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암호화폐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자산 분야에서 혁신 경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산 유출 우려와 디지털위안화 생태계 조성을 위해 단행한 암호화폐 규제가 부메랑이 될 거란 경고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2012년 비트코인 가격이 10배 이상 급등하면서 자국민들의 관심이 커지자 알리바바와 텐센트에 비트코인 관련 업무의 금지를 지시했다. 2017년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에 이어 2021년에는 가상화폐 거래 및 채굴을 전면 금지했다. ‘시진핑 체제’가 부정부패 척결을 본격화하자 부호들이 비트코인을 자산 유출 통로로 활용하던 시기와 대체로 맞물린다. 영국 정부 소유의 비트코인 6만1,000개도 모두 중국인의 불법 자금세탁 거래 압수물이다.
외견상 중국은 최근 규제 강화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해 말 국가외환관리국은 ‘위험거래’에 대한 시중은행의 감시ᆞ보고를 의무화했는데, 위안화로 암호화폐를 구매한 뒤 달러 등으로 교환하는 관행이 포함됐다. 암호화폐를 외환 규제 우회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게 못 박은 것으로, 디지털자산을 금융 안정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정책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암호화폐 자체를 불법화한 건 아니다. 상하이인민법원은 지난해 11월 블록체인 프로젝트 계약 관련 소송에서 암호화폐를 특정한 경제적 가치와 재산의 속성을 가진 상품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인의 가상화폐 보유는 불법이 아니지만, 기업 등의 상업적 활용이나 자체 발행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규제의 목표가 금융시스템 보호에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다. 미국과의 디지털자산 혁신 경쟁을 외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홍콩 암호화폐거래소 해시키의 샤오펑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의회와 트럼프가 암호화폐 관련 산업을 장려하면 중국도 2년 내에 암호화폐를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때 0%까지 떨어졌던 중국의 글로벌 비트코인 채굴 비중이 지난해 하반기에 20%대에 올라선 걸 두고 일각에선 중국 정부의 의도적 방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으로선 한 발 앞선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개발이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이 가상화폐 대신 디지털위안화를 국제화하고, 미국 국채 보유를 줄이는 대신 금 보유량을 늘려온 건 달러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CBDC 배제와 비트코인 전략자산화 정책으로 차세대 디지털산업의 핵심 축이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분야로 굳어질 공산이 커졌다.
결국 중국은 암호화폐 관련 기술적 혁신과 규제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규제가 과도하면 혁신이 가로막힐 거란 지적이 많지만, 시진핑 체제로선 암호화폐의 속성상 한 번 물꼬가 트이면 방어가 힘들 수 있는 국부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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