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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어린이가 구청에 보낸 그림 편지···"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무슨 사연?

입력
2025.01.30 19:00
23면
3 0

<사라진 마을 :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관광 공해’에 신음하던 북촌한옥마을
특별관리지역 지정 이후 소음 등 줄어
주민들, 정주 한옥촌 지속 가능성 걱정

편집자주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에 사는 한 어린이가 종로구에 보낸 편지. 주민 제공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에 사는 한 어린이가 종로구에 보낸 편지. 주민 제공


"북촌한옥마을을 지키기 위한 노력 정말 감사합니다."

서울 종로구 공무원들은 최근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그림 편지를 받았다. 발신인은 북촌한옥마을에 사는 한 어린이였다. 그림에는 이 동네에 놀러온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주민들이 귀를 막고 있는 모습과 소음이 사라져 사람들이 밝은 표정을 짓는 장면이 대비해서 담겼다. 지난해 11월 '통금'(통행금지) 시간이 생기기 전과 후의 마을 모습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정주해온 서울의 마지막 한옥마을. 이곳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토박이도 떠났던 북촌, 칼 빼 든 지자체

30일 종로구 등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무렵인 2023년 초 북촌한옥마을 주민들의 악몽이 다시 시작됐다.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단체 관광객들이 다시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대유행하기 전 이 마을 주민들은 소음과 불법 주차, 쓰레기 투기 등 '관광 공해' 탓에 몸살을 앓았었다.

서울의 대표 관광지로 소개되는 북촌의 매력은 실제 사람이 사는 정주 마을이라는 점에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민속촌과 달리 이곳 한옥은 수십 년간 주민들이 직접 가꿔온 덕에 '로컬 감성(지역 특유의 느낌)'을 즐기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만드는 각종 공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북촌에 살던 많은 주민들이 최근 10년 사이 마을을 떠난 이유다. 북촌에 걸쳐 있는 가회동·삼청동의 정주 인구는 2013년 이후 10년간 27.8%(2,422명) 줄었다.

가장 큰 고통은 소음이었다. 밤낮없이 들려오는 관광객들의 웅성거림과 이른 아침에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길바닥에 끄는 소리는 주민들을 괴롭혔다. 북촌에 20년간 실거주한 한 주민(53)은 "관광객이 많을 땐 골목을 가득 채운 인파를 헤집고 출근해야 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또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길바닥에 버리는 일이 흔했고 대문을 열고 들어와 소변을 보는 일까지 있었다.

2023년 8월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을 가득 채운 외국인 관광객 모습. 왕태석 선임기자

2023년 8월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을 가득 채운 외국인 관광객 모습. 왕태석 선임기자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토박이를 자처하던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대신 기업 등이 한옥을 사들여 별장으로 쓰거나 숙박 시설로 개조했다.

북촌이 흔한 상업용 관광지가 돼가자 구청도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 11월, 이 마을을 전국 최초로 관광진흥법상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관광객이 밀려들어 주민 생활환경 훼손 우려가 클 때 지방자치단체 등은 특별관리지역으로 마을을 보호할 수 있다. 종로구는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북촌로11길의 관광객 방문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한정했다. 다음 달까지 계도한 뒤 3월부터는 통행 가능 시간을 어겨 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과태료 10만 원도 부과할 방침이다.

특별관리지역이 된 이후 북촌 주민들의 일상은 조금 나아졌다. 북촌로11길에 사는 한 주민은 종로구에 보낸 편지에 "오전 8시부터 밀려드는 관광객 탓에 피로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조용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또 좁은 길을 막던 관광버스들도 지정된 승하차 지역에 정차하게 돼 주민 불편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주민들, 법 개정돼 관광객 밤낮없이 올까 걱정

다만 주민들은 여전히 걱정이 있다. 국회에서 특별관리지역 지정 때 지역 소상공인의 의견도 반영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상인 입장에서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까지 관광객을 받는 게 이득이기에 주민 불편이 크더라도 특별관리지역 지정에 반대할 수 있다. 법안에는 또 관광 가능 시간 제한 등에 따라 지역 소상공인에게 손실이 발생하면 지원금 지급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북촌 주민 20명은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에게 의견서를 보내 "(단기적으로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의 법안이) 지역 정주 여건을 악화시켜 장기적으로는 거주지로서 북촌을 파괴해 소상공인도 살아남기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광 공해 탓에 주거 여건이 악화하면 더 많은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 '유령 마을'처럼 변하고 관광객도 더는 찾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이들은 "일부 상업 시설은 정주권 피해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의견을 듣겠다는 건 사실상 특별관리지역의 법상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북촌 문제는 정주권 보호를 우선으로 보고 정책을 추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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