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요청에 구청이 신문고 민원인 정보 제공
인권위 "인권침해 아냐" 결정 법원이 뒤집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 제공 근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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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수사를 위해 안전신문고 민원인들의 개인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경찰이 구청에 요청하고, 구청이 이에 응한 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란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런 행위가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결정을 뒤집은 결론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이주영)는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이 인권위를 상대로 낸 진정 기각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건설노조원 A씨는 2022년 4월 행정안전부의 안전신문고에 '영등포세무서 청사 및 어린이집 신축공사 현장에 건설폐기물이 방치돼 있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023년 2월 영등포구청에 건설노조 불법행위 수사에 협조해달라며 안전신문고에 접수된 전체 민원인들의 개인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구청은 약 1년간 접수된 A씨 등 전체 민원인들의 정보를 제공했다. 2022년 10월에는 경찰이 A씨에게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 실장은 건설노조를 대표해 구청과 경찰의 행위가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기각·각하됐다. 인권위는 구청의 행위는 인권침해가 아니며, 경찰에 대한 진정은 "형사사건의 조사 범위와 내용의 타당성을 인권위가 판단하기 적절하지 않다"며 각하했다.
법원은 인권위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수사기관 요청만으로 다수 민원인의 개인 정보를 제공한 구청 행위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봤다. 경찰이 정보 제공을 요청하면서 불법행위 내용은 무엇인지, 수사가 필요한 범죄 혐의는 무엇이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봤다.
재판부는 인권위가 민원인 전수조사를 실시한 경찰에 대한 진정을 각하한 것도 위법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법 절차에서 검사의 불기소처분이나 법원의 최종적 판단에 이르기 전까지 수사기관의 부당한 수사로 인한 인권침해를 쉽게 구제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인권위는 수사 절차가 부당하게 이뤄져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경찰의 출석 요청은 인권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경찰이 불출석 시 이루어질 수 있는 형사소송법상 강제수사 절차를 설명한 것을 넘어 A씨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고지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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