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O, 2022년 위험성 경고
국토부, 대책 논의했지만 실행 못 해
"특정국 생산품 규제...통상 마찰 우려"
인력 부족·현장 혼란·승객 반발도 고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가 1월 31일 오전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에어부산 항공기 화재현장에서 합동감식 등 조사 일정을 결정하기 위한 사고기 위험관리평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에어부산 항공기 화재 원인으로 꼽히는 보조배터리와 관련해 정부가 3년 전 특정국 리튬 보조배터리의 항공기 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통상 마찰을 우려해 최종적으로는 철회한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관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2022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로부터 보조배터리 항공 운송을 경계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미국 국내선 항공편을 활용한 비인가 보조배터리 운송이 빈번하다는 경고였다. 유엔 검사 기준(UN Manual of Tests and Criteria)에 부합하는 안전성을 갖췄는지 불확실한 보조배터리가 우편물로 유통된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상거래와 항공 운송이 급증한 결과다. 당시 비인가 물품 연간 적발량(1만여 건) 대다수가 보조배터리였다.
국토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특정국에서 생산된 보조배터리의 기내 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논의했다. 국가와 업체를 막론하고 생산한 보조배터리를 합법적으로 운송하려면 유엔 검사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특정국 생산품에서 검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사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조사는 대개 제품 설명서에 충족 여부를 표시하는데 이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 일부는 관련 표기가 없었다.
당시 보조배터리 대부분은 한국을 비롯한 태평양 연안 4개국에서 생산했다. 유럽 생산량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제품이 유엔 검사 기준을 충족하도록 관리할 책임은 각국 정부에 있다. 일단 제품이 소비자에게 넘어간 뒤에는 당국이나 항공사가 안전성을 점검하기가 어렵다.
국토부는 다른 조치들도 구상했다. 보조배터리를 일일이 검증해 반입 허용 목록을 만드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차선책으로 거론됐다. 승객에게 비행기 탑승 시 보조배터리의 유엔 검사 기준 충족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절차도 대안으로 꼽혔다. 법적으로는 국토부가 관련 고시만 개정하면 시행 가능했던 방법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어떤 조치도 실현되지 못했다. 국토부는 고심 끝에 모든 조치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특정국 제품 규제는 무역 분쟁과 외교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다. 제품이 유엔 검사 기준을 충족해도 제조사가 별도로 표시하지 않을 가능성도 감안했다. 포지티브 규제는 당국 인력 부족과 특혜 시비가 문제였다. 승객에게 유엔 검사 기준을 확인하는 것은 현장의 혼란과 반발, 당국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우려됐다.
국토부는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를 계기로 다각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조배터리가 유력한 원인으로 거론된 만큼, 승객 불편도 일정 부분 감수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보조배터리를 비닐봉투에만 넣어도 외부로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며 “만약 보조배터리가 화재 원인으로 드러나면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모든 조치는 내부적으로 대책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거론됐던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치를 구체화해 외부로 공개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ICAO로부터 직접 통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 ICAO 산하 소그룹(소회의)에서 소식을 공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ICAO가 전한 내용은 보조배터리가 아니라 그 상위 개념인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포괄적 의견이었고 미국에서 적발된 비인가 물품 대다수도 리튬이온 배터리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조치가 초래할 영향이 커 고시만 수정할 수도 없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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