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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사람을 파악하려면 그가 누구와 불화하고 누구와 잘 지내는지를 알아보면 유용하다. 요즘 전 세계는 종잡을 수 없는 한 사람을 헤아리는 데 열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처법의 단서가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회고록에 있다. 집권 1기 때 트럼프는 메르켈과는 앙숙, 아베와는 절친이었다.
□ 메르켈은 트럼프에게 ‘상식’이 통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 회고록 ‘자유’에서 메르켈이 소개한 일화. 첫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악수를 거부했다. 기자들 앞이니 악수를 하자고 속삭인 메르켈의 말도 무시했다. 나쁜 행동을 모르고 하는 경우엔 알려주면 되지만 일부러 할 때는 속수무책이다. 메르켈이 그랬다. 그가 보기에 트럼프는 이상한 행동의 효과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메르켈의 대처는 너무 단정했다.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척'하다 트럼프에 밀렸다. 이후 미국과 독일 관계엔 ‘사상 최악’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 "일본이 트럼프의 표적이 되면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져버렸을 거다. 그는 상식을 넘어서는 인물이다." '아베 신조 회고록'의 한 대목이다. '외교 달인'이라 불린 아베는 파격과 인내로 트럼프를 대했다. 트럼프 당선 후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축하 전화를 하고 만나러 달려갔고, 미국 경호팀이 반대하는데도 트럼프에게 요구해 미국 대통령 전용차 비스트에 함께 탔다. 트럼프의 잡담으로 채워지는 전화통화를 1시간 30분씩 참고 견뎠다. 결과는 미국과 일본의 찰떡 밀착.
□ 아베는 트럼프 아부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 투자가 조지 소로스로부터 트럼프와 거리를 두라는 쓴소리도 들었다. 아베는 확고했다. "트럼프를 선택한 건 미국이지 우리가 아니다. 미국은 일본의 최대 동맹국이니 일본 총리가 미국 지도자와 친하게 지내는 건 당연한 의무다. (...) 미국 정책이 잘못됐다고 불평해 봐야 미일 관계가 어려워지면 일본에 어떤 이익도 되지 않는다." 국익 앞에선 상식, 관행이나 국가 지도자의 체면까지 때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시대의 혹독한 생존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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