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LG배 기왕전’ 판정 불복 논란 봉합
이번 사태 원인엔 중국 측 책임도 적지 않아
수습 과정서 보여준 중국 측 ‘힘자랑’엔 눈살
여전히 ‘LG배 기왕전’ 판정 거부 입장 유지
커제 9단에게 준우승 상금 전달도 대략난감
[반상톡톡(6)]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렸던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중국의 커제(가운데) 9단이 한국기원 관계자들에게 대국 규정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연초부터 격화됐던 한·중 반상(盤上) 갈등이 해빙 무드로 진입했다. 새해 첫 세계 메이저 기전 결승전에서 촉발된 사상 초유의 판정 불복 사태로 반한(反韓) 감정까지 확산, 냉각됐던 양국 바둑계는 2주 만에 가까스로 갈등이 봉합된 모양새다. 하지만 후유증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해당 기전을 주관한 한국기원 측의 매끄러운 대회 진행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중국 측의 감정적인 대응도 공감대를 형성하긴 어려웠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중국 바둑계 간판스타 커제(28) 9단의 생방송 대국 가운데 터져 나온 도발적인 거친 언행 역시 시청자들에겐 불편하기만 했다. 지난달 20~23일 벌어졌던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 결승전(3번기·3판2선승제) 도중 빚어진 커제 9단과 동갑내기인 한국 변상일 9단의 맞대결 파행 결과에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 뒷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 바둑계 행보는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1일 바둑계에 따르면 한·중 양국 불협화음은 이번 ‘제29회 LG배 기왕전’ 판정 불복의 원인으로 지목된 '상대방의 따낸 돌(사석) 관리 규정'을 폐지하겠단 한국기원 발표에 중국위기(圍棋)협회의 호응이 나오면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대국 도중) 사석 관리 규정 위반과 연관, 경고 누적에 따른 반칙패를 없애고 징계 수위 등 세부사항은 추후 논의하겠다”는 한국기원 측 공표에 “규정 개정 결정을 내린 한국기원에 감사한다”는 중국협회 측 메시지가 전해지면서다.

중국의 커제 9단이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한국의 변상일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양측의 충돌은 커제 9단과 변 9단의 ‘LG배 기왕전’ 결승전 3국 대국 종반 무렵부터 불거졌다. 1국을 승리했던 커제 9단이 2국에 이어 3국에서도 또다시 동일한 사석 관리 규정 위반으로 변 9단에게 우승컵까지 내준 것. 한국에선 대국 종료 후 계가를 사석으로 진행한다. 대국 도중, 필수인 정확한 수시 계가를 위해 ‘상대방 사석도 잘 보이는 위치(바둑통 뚜껑 위)에 놓아야 한다’는 취지의 별도 규정까지 도입한 이유다. 이 규정을 첫 번째 어길 경우 경고와 함께 벌점 2집이 공제되고 두 번째엔 반칙패가 주어진다. 계가 시, 사석이 불필요한 중국 바둑 경기 방식과는 다른 규정이다. 평소 사석 위치엔 무신경했던 커제 9단이 이번 LG배 결승전 2, 3국에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했던 이유다. 지난해 11월부터 한국기원 주관의 모든 국내 기전에 적용됐던 해당 규정은 이번 ‘LG배 기왕전’ 참가 선수들에게도 사전 공지됐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에 참석한 창하오(49) 중국위기(圍棋)협회 주석(회장)이 “’2025 갑조리그’부턴 중국 선수들에게만 수여해왔던 개인상 선정 규정을 바꿔서 용병들에게도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협회 측은 커제 9단의 ‘제29회 LG배 기왕전’ 판정 불복 사태 직후 “올해 갑조리그에선 외국 용병 참가를 불허하겠다”고 전하면서 한국 선수 배제를 염두에 둔 듯한 조치를 취했다. 중국위기협회 제공
문제는 이번 논란 이후, 수습 과정에서 초강경 입장만 고수한 중국 측의 상식 밖 대응에 있다. 원활한 대회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한국기원 측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대회 전부터 공유된 규정을 어긴 커제 9단과 중국협회 측의 과격한 대응은 이해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 사고 대국을 지켜본 한 중견 프로 바둑 기사는 “이번 ‘LG배 기왕전’ 3국에서 155번째 착수로 따낸 상대방의 사석을 바둑돌 통 뚜껑에 넣지 않았던 커제 9단은 159수 착점 이후에야 개입한 심판진에게 삿대질까지 섞어가면서 고성으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며 “알고 보니, 이 장면은 ‘본국 협회와 논의할 시간을 달라’는 현장 중국 대표팀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지연됐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심판진이 중국 대표팀의 현장 입장과 무관하게 즉각 사석 관리 위반 규정 적용에 나섰다면 이번 ‘LG배 기왕전’ 판정 불복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였다. 결과적으로 한국기원 입장에선 심판진의 냉정한 경기 운영이 아쉬웠던 대목이지만 “(LG배 기왕전 3국) 심판의 중단 시기가 부당하고 경기의 정상적 진행에 영향을 줬다”며 “심판의 과도한 방해로 계속 경기를 마칠 수 없었다”고 주장한 중국협회에 뒤통수만 맞은 꼴이다. 국내 바둑계 내부에서 “경기 주최 측인 한국기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재경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번 LG배 3국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집한 중국협회 측 비난에 대해 이율배반적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신의 실수보단 심판진에게 화살을 돌리면서 이번 ‘LG배 기왕전’ 시상식조차 불참한 커제 9단의 비매너도 납득할 순 없긴 마찬가지다.
세계 바둑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협회의 난폭한 ‘힘자랑’에도 비난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중국 측이 당초 이달 6일부터 열릴 예정이었던 올해 국내 첫 세계 기전인 ‘제1회 쏘팔코사놀 세계최고기사결정전’(우승상금 2억 원)의 참가 거부를 일방적으로 통보, 해당 기전이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이 대회엔 주최국인 한국(4명)을 비롯해 중국(3명)과 일본(1명), 대만(1명) 등이 참가할 계획이었다. 커제 9단은 중국 내 선발전에선 탈락했지만 주최 측의 와일드카드로 포함됐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바둑계 최고 무대인 ‘중국갑조리그’(1999년 출범)는 주최국을 포함해 바둑 강국인 한국과 일본 및 대만 등에서 주요 선수들만 선발, 비싼 몸값을 지불하고 자국 내 상위 랭커들과 진검승부 대진으로 운영됐지만 ‘2025 시즌’엔 외국 용병들은 배제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위기(圍棋)협회 제공
바둑계에선 최고 무대인 ‘갑조리그’(1999년 출범)에 올해 외국인 선수 참가를 불허하겠다고 천명한 중국협회의 뜻밖의 방침도 이번 ‘LG배 기왕전’ 판정 사태에 따른 보복성 조치로 해석한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린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에 참석한 창하오(49) 중국협회 주석(회장)이 “’2025 갑조리그’부턴 중국 선수들에게만 수여해왔던 개인상 선정 규정을 바꿔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넓힐 것”이라고 강조했던 공언과 정반대 행보다. 중국갑조리그 출범 이후, 외국인 선수 참가의 전면 불허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4 중국갑조리그’엔 신진서(25) 9단과 변 9단을 포함한 7명의 한국 선수가 참가했다. 신 9단은 지난해 이 리그에서 15전 전승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마지막 봉합 순간까지 보여줬던 중국협회측의 행태 역시 씁쓸했단 후문도 들린다. 국내 최대 기전인 ‘2024~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 참가 중인 한 프로 바둑 기사는 “중국협회는 한국기원에 보내온 공문에서 이번 ‘LG배 기왕전’ 사태와 관련해 자국의 참가 의사는 밝히지 않고 ‘(향후) 한국 주최의 세계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길 희망한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혼선을 부추겼다고 들었다”며 “아직까지 중국협회 차원에서 ‘LG배 기왕전’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커제 9단에게 준우승 상금(1억 원)을 전달하는 것도 애매한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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