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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 1년에 13억개 팔리는 '되너 케밥', 때아닌 원조 논쟁… 무슨 일?

입력
2025.03.17 04:30
15면
4 2

[신은별의 별의별 유럽: 시즌2]
⑮ '되너 케밥' 기준 논란

편집자주

우리가 알아야 할, 알아두면 도움이 될, 알수록 재미있는 유럽의 이야기를 신은별 유럽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왼쪽 사진은 지난달 12일 독일 베를린의 한 되너 케밥 전문점에서 관계자가 거대한 고깃덩이를 칼로 얇게 저미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이렇게 자른 고기를 넣어 만든 되너 케밥.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왼쪽 사진은 지난달 12일 독일 베를린의 한 되너 케밥 전문점에서 관계자가 거대한 고깃덩이를 칼로 얇게 저미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이렇게 자른 고기를 넣어 만든 되너 케밥.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낮 11시 30분. 독일 베를린 중앙역 내부에 위치한 한 케밥(구운 고기 요리) 전문점에 기차 탑승 전후 허기를 달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손님들이 앞다퉈 주문한 음식은 케밥 갈래 중 하나인 '되너 케밥(döner kebab)'.

되너 케밥은 작게 조각 낸 고깃덩이를→기다란 막대기에 겹겹이 꽂아 올려 다시 거대한 고깃덩이로 만든 뒤→이를 회전 바비큐 방식으로 익혀→먼저 익은 바깥쪽부터 저며내는 방식으로 만든 음식이다. 저며낸 고기는 야채, 감자튀김 등과 함께 접시에 담겨 판매되기도 하지만, 독일에선 얇은 빵에 둘둘 말거나 동그란 빵 안에 넣어 먹는 형태가 인기가 더 좋다.

불 앞에서 쉬지 않고 회전하는 세 개의 거대한 고깃덩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되너 케밥을 만드는 요리사들을 바라보던 손님 게츠는 말했다.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할 때 되너 케밥은 늘 유력한 선택지예요." 독일 내 연간 되너 케밥 판매량은 13억 개 정도로 추산된다. 인구 규모(약 8,400만 명)에 단순 적용하면 독일인 한 사람이 1년에 15개의 되너 케밥을 먹어 치우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12일 독일 베를린의 되너 케밥 전문점에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지난달 12일 독일 베를린의 되너 케밥 전문점에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독일이 이처럼 사랑하는 되너 케밥의 운명이 최근 위태위태하다. '케밥 원조 국가' 튀르키예가 '전통 조리 방식을 지키라'고 딴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미 독일에서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은 되너 케밥이 제멋대로 변형돼 판매되는 것을 바로잡겠다며 튀르키예 전통 방식대로 만들지 않으면 '되너 케밥'이라 부를 수 없도록 유럽연합(EU)에 관련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독일은 '말도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때아닌 '되너 케밥 전쟁'을 현지에서 살펴봤다.

'튀르키예 출신'이 '독일 국민 음식'으로

중동에서 탄생한 '케밥'은 열로 요리하는 고기를 통칭한다. 고기를 써는 방식 등에 따라 나뉘는데, 다진 고기를 쓰면 '아다나 케밥', 깍둑 썬 고기는 '파틀리칸 케밥'으로 불리는 식이다. 되너 케밥은 '돌다, 회전하다'라는 뜻의 튀르키예어 '된멕(dönmek)'에서 유래했다.

지난 11일 독일 베를린 한 케밥 전문점 안쪽으로 되너 케밥에 활용되는 거대한 고깃덩이가 보이고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지난 11일 독일 베를린 한 케밥 전문점 안쪽으로 되너 케밥에 활용되는 거대한 고깃덩이가 보이고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독일에 본격 상륙한 건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은 전후 경제 발전을 위해 튀르키예 노동자를 대거 수용했는데, 이때 튀르키예 식문화가 독일로 함께 건너왔다.

빵에 둘둘 말아서 혹은 빵 속에 넣어서 먹는 되너 케밥은 1972년 튀르키예 출신 이민자 카디르 누르만이 최초로 개발했다고 '유럽튀르키예되너제조업협회(ATDID)'는 안내한다. 당시 서독에 속했던 베를린의 동물원역 앞 노점을 차린 그는 바쁘게 역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먹기에 편한 되너 케밥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고, 접시에 야채 등과 함께 담아내던 되너 케밥을 햄버거·샌드위치 형태로 변형했다. 처음엔 고기만 넣던 되너 케밥에 야채, 소스 등을 가미하자 맛은 배가됐다. 처음에는 튀르키예 출신 이민자의 식사였던 이 요리는 독일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으로 거듭났다.

에르도안 코치 독일되너생산자협회(VDD) 홍보 담당자가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코치는 "독일에서 되너 케밥은 독일 전통 음식인 소시지보다 더 인기 있는 패스트푸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코치 독일되너생산자협회(VDD) 홍보 담당자가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코치는 "독일에서 되너 케밥은 독일 전통 음식인 소시지보다 더 인기 있는 패스트푸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독일되너생산자협회(VDD) 홍보 담당 에르도안 코치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독일 내 되너 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독일 전역에는 약 2만 개의 되너 케밥 매장이 있어요. 되너 케밥은 가장 많이 소비되는 패스트푸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랩니다. 영양소를 고루 갖춘 음식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인기 비결이죠.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소, 닭, 양 등 원하는 고기를 선택할 수 있고, 빵, 야채, 소스도 취향껏 택할 수 있어요."

업계에서는 '독일에서 되너 케밥은 전통 음식인 소시지보다 더 인기 있는 패스트푸드'란 주장도 나온다. 실제, 2022년 독일 dpa통신 의뢰로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소시지에 카레를 곁들인 케첩 소스를 부어 먹는 독일 인기 패스트푸드인 '커리부어스트'에 대한 선호도(37%)보다 되너 케밥 선호도(45%)가 더 높게 나타났다.

"이게 되너 케밥이냐" 딴지 건 튀르키예

코치가 언급했듯, 되너 케밥 인기 비결은 다양한 맛을 파생한다는 점이다. 일단 고기에 간을 하거나 소스를 첨가하는 방식부터 제각각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여러 종류의 후추, 소금 및 타임(향신료의 일종), 요거트 또는 우유, 필요에 따라 토마토, 양파 등으로 고기에 간을 한다'고 규정하는 반면, 독일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식당이 수두룩하다.

다른 재료 또한 마찬가지다. 양파, 토마토, 양상추, 오이, 당근, 절인 양배추 등이 기본 재료 격으로 동원되는데, 여기에 이색 재료가 더해지기도 한다. 가령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되너 케밥 전문점인 M식당과 G식당은 감자, 당근, 호박을 기름에 볶아 고기와 함께 내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염소젖 또는 양젖으로 만든 치즈, 병아리콩이나 누에콩을 잘게 다진 뒤 완자로 빚어 튀긴 팔라펠 등을 넣는 곳도 많다. 아보카도를 넣어 고소한 맛을 낸 되너 케밥도 제법 인기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러한 '변주'가 '전통'을 해친다고 봤다. 이에 지난해 4월 '되너'를 '전통 식품'으로 등록하기 위해 유럽연합(EU)에 신청서를 냈다. EU에는 '전통 특산품 보장(Traditional Specialty Guaranteed·TSG)'으로 불리는 제도가 있다. 특정 음식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원료, 생산 방법, 가공 방식 등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의 '나폴리 피자', 스페인의 '세라노 햄' 등이 TSG로 등록돼 EU의 보호를 받고 있다. 튀르키예 요청을 EU가 받아들인다면 튀르키예 규정대로 만든 음식만이 '되너'로 불릴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법률 관련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EUR-Lex)에 되너 케밥을 전통음식으로 등재하기 위한 튀르키예 정부의 신청서가 게재돼 있다. EUR-Lex 캡처

유럽연합(EU)의 법률 관련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EUR-Lex)에 되너 케밥을 전통음식으로 등재하기 위한 튀르키예 정부의 신청서가 게재돼 있다. EUR-Lex 캡처

튀르키예가 EU에 제출한 '되너 케밥으로 불릴 수 있는 기준'은 놀라울 정도로 깐깐하다. △오직 닭, 양, 또는 태어난 지 16개월 미만의 소만 사용해야 하고 갈린 고기 또는 칠면조는 사용할 수 없다. △얇게 썬 고기는 큰 고깃덩어리로 만들기 전 요거트, 우유, 후추, 토마토 퓌레, 허브, 소금을 섞은 소스에 담근다. 닭고기를 재울 땐 우유를 사용하지 않는다. △꼬치에 고기를 꽂을 땐 3~5겹마다 소 또는 양의 지방을 배치한다. 지방 함량은 붉은 고기의 경우 최대 25%, 닭고기의 경우 최대 20%로 한다. △동물성이 아닌 단백질, 전분, 전분성 물질, 콩 또는 콩 제품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향신료 혼합물의 전분과 식물성 단백질 함량은 총중량의 1%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되너 종류에 관계없이 열에 조리되는 동안 고기는 스테인리스 칼을 활용해 위에서 아래로 얇은 띠 모양으로 썰려야 하고 두께는 3~5㎜이어야 한다.

"입맛대로 먹을 자유"... 발끈한 독일

독일 정부는 지난해 7월 EU에 항소를 제기했다. '되너'라는 명칭은 '피자' '샌드위치'와 같은 보통명사나 다름없기에 '작은 고깃덩이를 겹쳐 큰 고깃덩이로 만든 뒤 이를 다시 저민다'는 방식만 따른다면 접시에 담아내든, 빵에 싸 먹든, 무슨 야채를 넣든, 어떤 소스를 뿌리든 '되너 케밥'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게 독일의 입장이다. 이런 흐름에서 튀르키예의 조치는 '억지'일 수밖에 없다.

샘 오즈데미르 독일 연방 식품농업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튀르키예 정부의 TSG 신청에 이렇게 반박했다. "케밥은 독일의 일부다. 되너 케밥은 독일 음식이다. 독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음식을 어떻게 준비하고 먹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앙카라(튀르키예의 수도)로부터의 지시는 필요 없다."

샘 오즈데미르 독일 연방 식품농업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튀르키예 정부의 되너 케밥에 대한 전통 특산품 보장 신청을 비판했다. 오즈데미르 X 캡처

샘 오즈데미르 독일 연방 식품농업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튀르키예 정부의 되너 케밥에 대한 전통 특산품 보장 신청을 비판했다. 오즈데미르 X 캡처

그럼에도 독일 내 케밥 업자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튀르키예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자칫 독일 내 되너 케밥 전문점 상당수가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치는 "새로운 레시피는 이미 사업을 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규제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정부의 TSG 신청 목적이 '전통의 맛 지키기'보다는 '튀르키예 공급자의 경제적 이익 확대'에 있다고 의심하는 시선도 독일에 많다.

EU의 판가름은 조만간 공개된다. 단, 어떤 결정이 나든 되너 케밥을 둔 튀르키예와 독일 간 전쟁이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전통 지키기'의 문제인 반면 다른 누군가에겐 '문화적 다양성 실현'의 문제다. 간극이 수월하게 좁혀지긴 어려워 보인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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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0 / 250
  • OTTL 2025.03.17 11:11 신고
    재미있네요.
    되너케밥은 거의 독일의 짜장면 정도 되는 위상을 가진 음식인데, 이걸 튀르키예 정부가 자국 음식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규제하려 한다. 이런 거네요. 독일사회에 가장 융합이 잘 된 튀르키예 문화일텐데 어떤 결론이 날까요.
    일본식 기무치는 진짜 김치가 아니다 김치로 불리려면 고춧가루 함량은 어느정도이고 젓갈은 어느정도 집어넣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거라고 하니까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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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ㄴㄷ무 2025.03.17 10:13 신고
    피자에 파인애플을 넣고 고구마를 넣어도 원조는 어느나라인지 다 안다. 전세계 입맛이 모두 다른데 현지에까지 맛을 규격화하는건 문화적 자신감이 없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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