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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쟁이 봄바람

입력
2025.03.05 18:30
수정
2025.03.07 10:55
27면
4 0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비의 날갯짓에 튕겨진 햇살이 꽃에게 가서 닿자 봉오리가 벙긋벙긋 웃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나비의 날갯짓에 튕겨진 햇살이 꽃에게 가서 닿자 봉오리가 벙긋벙긋 웃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봄바람이 불면 설렌다. 연분홍 치마에 흩날리는 꽃잎 때문이다. 벌과 나비의 날갯짓이 화려해지는 것도 나와 같은 이유일 게다. 날갯짓에 이리저리 튕겨진 햇살이 꽃들에게 가서 닿자 봉오리가 벙긋벙긋 웃는다. 저 해맑은 웃음은 달래 냉이 씀바귀 쑥에게 손짓할 것이다. 저 보드라운 웃음은 산과 들의 겨드랑이도 간지럽힐 게다. 에취! 산과 들이 몸을 크게 떨며 재채기를 하자 봄물이 제대로 올랐다. 분홍과 연둣빛, 봄이 고운 색을 입었다.

봄바람을 온전히 믿진 않는다.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게 봄바람이다. 이름도 한둘이 아니다. 보드랍고 화창한 ‘명지바람’, 솔솔 부는 ‘실바람’, 향기로운 ‘꽃바람’은 듣기만 해도 설렌다. 마음이 다 풀어질 즈음 봄바람은 슬슬 심술을 부린다. 꽃을 시샘하는 ‘꽃샘바람’과 살을 파고드는 ‘살바람’으로 온 세상을 움츠러들게 한다.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 “2월(음력)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꿈과 그리움을 한아름 안은 ○○○○가 피어오르면 마음을 놓아도 된다. 아른아른, 아물아물과 잘 어울리는 이것은 따스함 그 자체이니까. 시와 노랫말에 곧잘 등장하는 이것은 아지랑이일까, 아지랭이일까.

소리를 내 보면 아지랭이가 입에 척 달라붙는다. ‘-랑이’보다 ‘-랭이’가 말하기 편한 건 뒤에 있는 ‘이’ 때문이다. 어떤 음운이 뒤에 오는 ‘ㅣ’의 영향을 받아서 그것과 비슷하거나 같게 소리가 나는 현상을 ‘ㅣ’모음 역행동화라고 한다. 가랑이 지푸라기 호랑이 곰팡이 가자미 고기 아비 어미를 [가랭이 지푸래기 호랭이 곰팽이 가재미 괴기 애비 에미]라고 소리 내는 게 대표적인 말들이다. 지방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정겨운 말소리다.

눈치챘겠지만 앞의 낱말들이 바른 말이다. 표준어 규정은 ‘ㅣ’모음 역행동화 현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신경 써서 소리 내면 피할 수 있는 발음이라서 동화된 형태를 표준어로 삼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말이 너무 많다. 만약 이들 낱말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손잽이'가 아닌 손잡이가 표준말이듯 ○○○○의 바른 말은 아지랑이다.

유독 짧아서 소중한 봄이다. 아지랑이가 옆구리 툭툭 칠 때 맘껏 즐겨야 한다. 박인희의 노래 ‘봄이 오는 길’을 부르니 꽃샘추위도 사르르 녹았다.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고향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 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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