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국민 가르치려 '계몽령' 내렸단 궤변
민주주의·헌법 가치 일깨운 역설적 계몽효과
헌재 탄핵선고, 이젠 尹이 계몽할 시간 온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마누엘 칸트와 윤석열 대통령.
‘계몽’이 한국에서 수난당하고 있다. 계몽은 16~18세기 유럽에서 낡은 제도·관행에 저항한 운동이다. 계몽 개념을 완성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1784년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답변’에서 “감히 알려고 하라”는 문장으로 계몽 정신을 정의했다. 봉건군주와 국민의 절대적 위계관계 속에 ‘통치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지성과 용기로써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계몽의 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등장한 ‘계몽’은 국민을 피동적 개조 대상으로 본다. “지식 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친다”는 사전적 의미에 가깝다. “끓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눈앞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가는 이 나라의 현실”이 윤 대통령에게만 보였기에 ‘계몽령’을 내렸다고 변호인단은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패악과 일당독재 파쇼 행위를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느라 몰랐다”는 김계리 변호사는 계엄으로 “저도 계몽되었다”고 간증하듯 말했다.
‘무지막지한 충격요법을 통해 각성시키다’가 윤 대통령이 창조한 계몽의 새로운 의미라면, 정말로 무수한 사람이 계몽되었다. 우선 ‘민주주의에 완성이란 없으며 끊임없이 유지·보수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어났다. 한 사람 혹은 소수의 광기와 폭주 앞에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언제든 무력해질 수 있음이 계엄 사태로 드러났다. 일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책 ‘무지의 즐거움’에서 말한 대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손을 뗀 사람들은 더는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 피땀으로 얻어냈으니 그걸로 끝이 아니란 얘기다.
87년 체제는 다시는 군부독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기에서 출발했다. 헌법과 계엄법을 대통령을 제어하는 이중 안전장치로 두었지만 권한을 휘두르기로 작정한 대통령 앞에선 구멍이 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야당’을 48번 언급했다.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왜 야당이 제왕을 하느냐”는 취지로 토로했다. 스스로 제왕이 되지 못해 억울했던 것이다. 민주적 선거 절차가 그런 대통령을 거르지도 못했다. 결국 ‘이상한 대통령’ 리스크를 피하려면 대통령의 비대한 권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의 불가피성’도 ‘계몽령’이 역설적으로 일깨웠다.
윤 대통령이 원하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계몽은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계몽은 영어로 ‘Enlightenment’다. 빛(Light)으로 어둠과 무지를 몰아낸다고 풀어 쓸 수 있겠다. 시민들은 스스로 빛을 밝혔다.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를 “내가 가진 가장 빛나고 소중한 것”이라는 응원봉이 물들였다. 어느 건설노동자는 “내게 가장 소중한 빛”이라며 헤드랜턴을 쓰고 나왔다. 민주공화국을 지키겠다는 광장의 열망이 빛으로 발산했다.
불법계엄이라는 어둠이 빛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 빛의 의미가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의 최후변론에 담겨 있다. “덕분에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무모하고 무도한 대통령 한 사람이 뒤집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자유와 기본권은 단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내면화한 가치이며 양심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윤 대통령이 계몽당할 시간이다.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이니 무죄라고 그는 주장했다. 대통령으로 복귀해 개헌도 하고 국민통합도 하고 외치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잠꼬대 같은 소리다. 그는 곧 꿈에서 깰 것이다. 그가 깨어날 날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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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의결수가 안찼는데 못들어오게 막는게 아니라 끌어내린다고 생각하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