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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침묵할 때

입력
2025.02.27 17:00
26면
1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MBC 뉴스 캡처

MBC 뉴스 캡처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조선일보 폐간에 난 목숨 걸었어”라고 말하는 음성 녹음에 이목이 쏠렸다. 주진우 시사iN 편집위원이 공개한 것으로, 지난해 11월 명태균씨가 구속 직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대통령 부부 관련 파일을 건네주며 대통령실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대통령 부부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주 위원은 분석한다. 자신들 약점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라 판단해 진노했다는 것이다. 주 위원은 이 음성 녹음이 12·3 계엄 이후 녹음된 것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음성 녹음이 담긴) USB를 대통령실에 전달한 적이 없으며, 주 위원의 그런 주장을 인용 보도하는 매체에는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제공한 명씨가 자신 동의 없이 보도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윤리헌장과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될 것으로 판단해 보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국 딸 세브란스 인턴’(2020년8월) 보도 등에서 익명 인용을 주저하지 않았던 조선일보답지 않은 해명이다.

□ 비슷한 사례가 20년 전에도 있었다.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조작 의혹이 확산하던 2005년 말, YTN은 고대 법의학연구실에 황 교수팀 줄기세포 시료 6개의 DNA 분석을 의뢰했는데 “줄기세포 DNA가 체세포와 모두 불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일보와 MBC 등의 조작 의혹 제기에 대해 황 교수 지지자들이 항의 촛불 시위까지 벌이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까지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다.

□ 기자는 취재한 내용이 권력자 생각이나 사회 통념에 맞지 않을 때,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지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실의 편이 될 때야만 언론의 가치와 필요성을 대중이 실감하고 언론의 자유를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특종의 가치가 분명한 USB를 확보하고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김 여사가 주요 언론에 대해 “지들 말 듣게끔 하고 뒤로 다 거래하고”라고 말한 이유도 조선일보가 침묵하는 이유에 더 화가 났기 때문은 아닐까.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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