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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카데미과학 회장님

입력
2025.03.05 16:30
26면
5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고 김순환 아카데미과학 회장. 유족 제공

고 김순환 아카데미과학 회장. 유족 제공

1970년대와 80년대 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남학생들에게 최고 인기 선물은 아카데미과학에서 나온 조립식 모형(플라스틱 모델, 플라모델)이었다. 플라스틱 사출 성형으로 제작된 부품들을 조립, 축소판 탱크나 비행기, 자동차 등을 만드는 일종의 과학 교재 겸 장난감이다. 학교 앞 문구점엔 새 모형을 구경하기 위한 아이들이 항상 바글바글했다. 세뱃돈을 모아 큰맘 먹고 산 모형의 플라스틱 틀에서 연필깎이 칼로 하나하나 부품을 떼어낸 뒤 도면 순서대로 조립하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했다. 작은 부품 하나라도 망가지면 물거품이 되는 만큼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재미있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내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직접 만든 완성품을 보면 성취감과 함께 마치 신이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 1969년 아카데미과학을 창업한 이는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조립식 모형과 무선 조종 자동차를 즐겼는데 교사 월급으론 취미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자 집 뒤편에 작은 작업장을 마련, 고무줄로 움직이는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어 판 게 사업으로 컸다. 돈도 벌면서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길 바랐다. 철저한 고증으로 실물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 힘썼고 기술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국내 조립식 모형 시장에서 독보적 1위가 된 배경이다. 해외 시장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아 국제적인 상도 여러 차례 받으며 국위를 떨쳤다.

□ 지난 1일 김순환 회장이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나자 관련 기사와 장례식장 게시판엔 고인의 명복을 비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지금은 50세 안팎이 된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평생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데 대해 고마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 아카데미과학은 작은 기업이나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당시 어린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통령과 함께 가장 많이 나온 답이 과학자였다. 조립식 모형을 통해 상상력과 과학의 꿈을 키운 이공계 인재들이 지금의 대한민국 산업계와 과학계를 일군 주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과학이 더 중요해졌는데 정작 과학자가 되겠다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더 아쉽다. 회장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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