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이인혜, '씻는다는 것의 역사'

2023년 1월, 서울의 한 목욕탕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목욕 문화는 당대의 사회상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몸을 깨끗하게 씻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 방식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신간 '씻는다는 것의 역사'에서 목욕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집필을 위해 세신 서비스를 하루에도 두어 번씩 받고, 전국의 목욕탕을 누볐다.
목욕에는 수많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얽혀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목욕을 체액의 균형을 맞춰주는 의료 처치로 여겨 환영했다. 특히 고대 로마인에게 목욕은 사교의 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카페에 가듯이 매일 공중목욕탕에 들러 대화를 나눴다. 반면 중세 유럽 사람들은 열린 모공을 통해 나쁜 공기가 몸에 들어온다고 믿어 목욕을 꺼렸다. 한국 목욕탕에는 뜨거운 물을 담을 욕조가 필수지만 이슬람 문화권은 고여 있는 물을 불결하게 생각해 목욕 시설에 탕을 만들지 않는다.
고려시대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개울가에서 몸을 씻었다. 반면 유교 국가였던 조선시대 때 타인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비누의 보급과 이태리타월의 발명, 공중목욕탕의 확산이 맞물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탕을 찾아 때를 미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번성하던 목욕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 온수가 나오는 가스보일러와 욕조가 설치된 화장실이 집집마다 생기면서 목욕탕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코로나19 영향도 컸다. 2020~2022년에만 전국에서 목욕탕 730여 곳이 폐업했고, 목욕탕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대가 등장했다. 국내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 대전의 유성호텔 대온탕은 지난해 3월 문을 닫았다.

씻는다는 것의 역사·이인혜 지음·현암사 발행·392쪽·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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