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더글러스 브런트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루돌프 디젤(왼쪽)이 실종되기 1년 전인 1912년 미국에서 발명가 에디슨을 만나 함께 찍은 사진. 세종서적 제공
1913년 9월 영국을 향하던 여객선에서 승객 한 명이 사라졌다. 디젤 엔진을 발명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던 독일 발명가 루돌프 디젤(1858~1913)이었다. 사고사, 자살, 타살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갑판 위에 단정하게 접혀있던 그의 코트와 모자, 실종 11일 후 ‘시신을 발견해 소지품을 꺼낸 후 시신은 다시 바다로 던졌다’는 항만 관리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책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는 잊힌 천재 발명가의 생애와 의문투성이인 그의 최후를 세밀하게 되짚는다. 디젤이 오랜 노력 끝에 1897년 발명한 디젤기관은 산업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인부들이 쉼 없이 석탄을 때야 했던 커다란 증기기관이 당연시되던 때, 작고 효율적인 기관이 등장한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디젤기관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라고 말했고,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디젤기관을 장착한 화물선이 “금세기 가장 완벽한 걸작”이 될 거라 내다봤다. 발전을 거듭한 디젤기관은 오늘날 상선, 화물 트럭 등 해양·항공·육상 등 전 산업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박물관에 전시된 디젤엔진. 세종서적 제공
어린 시절 독일 출신의 가난한 난민으로 유럽을 떠돌았던 디젤이 새로운 동력원을 만든 건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대기업만 누리던 동력원을 가죽제본공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같은 장인 계층, 농촌 노동자들도 사용해 삶이 개선되기를 바랐다. 값비싼 석유 대신 견과류나 식물 기름으로도 디젤기관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디젤기관을 가장 빨리 가져간 곳은 군대였다. 각국은 군함, 잠수함에 디젤기관을 장착해 해군력을 높였다. 디젤 실종 4개월 후 벌어진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 디젤기관은 해군력 증강의 핵심 장치였다.
디젤은 왜 1차 대전 직전에 사라졌을까. 저자는 영국과 독일의 군비 경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디젤이 실종된 사실에 주목했다. 몇 년간 미국과 유럽의 문서보관소에서 디젤 관련 자료와 디젤의 일기 등을 조사한 저자는 그의 최후가 자살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디젤이 군비 경쟁을 벌이던 한 국가로 망명해 연구를 이어갔다고 추정한다.
디젤은 에디슨, 아인슈타인에 맞먹는 역사적 발명가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디젤기관의 '디젤'이 발명가 이름이라는 사실조차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저자는 디젤이 2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 출신이며 자살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디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사후 명예와 존경을 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한다.

디젤기관을 발명한 루돌프 디젤. 세종서적 제공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더글러스 브런트 지음·이승훈 옮김·세종서적 발행·424쪽·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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