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계엄 후 100일, 내전의 싹을 자를 때

입력
2025.03.12 17:10
수정
2025.03.12 20:03
26면
4 0

尹 석방 후 고조되는 찬탄-반탄 대립
李 암살시도 제보 등 폭력 우려 커져
정치권 서둘러 헌재 선고 승복 선언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서부지법 난동 사태' 첫 재판이 열린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호송버스를 향해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부지법 난동 사태' 첫 재판이 열린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호송버스를 향해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부터 대한민국 앞을 가로막아온 계엄 정국의 산맥은 험준한 기세를 꺾지 않고 있다. 여의도로 모여든 시민과 국회의원들이 계엄을 멈추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만 해도 머지않아 그 산세는 잦아들고 완만한 능선이 나타날 것이라 기대됐다. 그러나 "문제를 풀어낼 해결책을 얻을 때마다 늘 새로운 난관으로 들어서는 입장권을 받게 된다"고 했던 헨리 키신저의 말은 또 한번 참이 됐다.

윤 대통령 체포와 내란 주동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가 이어지면서 연초부터 우리 사회는 미증유의 대립 국면으로 내몰렸고, 급기야 8일 윤 대통령이 풀려나면서 계엄 정국 초기보다 더 심각한 내분을 겪기에 이르렀다. 법원을 흉기로 때려부수고 방화를 시도했던 무리가 떳떳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혼돈. 사법 기관들끼리 맞붙은 형사소송 논쟁과 이를 견강부회하며 광장으로 달려나가는 찬탄과 반탄.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 이후 무려 100일(12일 기준)을 보내고도 다시 마주하는 오르막의 장면들. 이를 지켜보며 많은 국민은 이 말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내전의 위기.

내전은 국가처럼 동일한 목표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이 특정 이슈로 갈라져 끝내 전투 등 폭력 대치로 치닫는 상태를 의미했다. 총칼을 맞대며 피를 흘려 60만여 명이 숨진 남북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20세기 들어 50개국 이상이 내전이라 불릴 사건 속으로 휘말렸다. 여기에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살육전이 보다 적합하지만, 확대 해석한다면 2021년 1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폭도들에 의해 벌어진 미 의사당 점령사건도 그것의 시발점이라 할 만하다. 현대적 의미의 내전은 어떤 사회가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고난(바버라 월터,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2025)으로 풀이되곤 해서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내전의 위기라는 카테고리엔 긴장이 격화되는 윤 대통령 탄핵국면이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질까 우려스럽다. 우선 윤 대통령의 석방이 불러온 소용돌이가 심상치 않아서다. 그동안 관저와 옥중에서 밝힌 그의 메시지는 종종 극단주의자들을 독려했다. 대통령의 발언과 몸짓은 석방 후 완화된 듯하나, 행간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계엄 정당성 주장은 그대로이고, 여기에 힘을 얻은 듯 서부지법 난입사건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파괴한 법정에서조차 당당했다. 헌재 선고가 있을 것이라 전망됐던 이번 주 들어선 폭력의 시그널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헌재 재판관들에 대한 테러 위협 소식이 들려오고 광장에선 상대 진영을 향한 폭언의 정도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12일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밀수한 러시아제 권총으로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제보마저 등장했다.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지을 헌재 선고가 빠르면 수일 내 이뤄질 전망이다. 따라서 내전 위기로 번지게 할 심각한 폭력 사태 가능성을 낮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당국의 휴교령과 총기출고 금지, 헌재 주변을 차벽으로 둘러싸고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대응 등으론 충분치 않다. 하루빨리 대통령과 여야 모두 헌재 선고 승복을 선언하고, 이에 반하는 메시지로 들릴 발언은 멈춰야 한다. 2021년 미 의사당 점령사건은 "의회에 불만을 터뜨려"라고 외친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 말이 불붙였다. 당시 현실화하진 않았지만 극단주의자들은 100만 민병대 진입 작전까지 짜놨다. 역사는 안타깝게도 인간의 실수가 거듭되면서 완성된다고 한다. 내전의 싹을 잘라낼 마지막 시간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양홍주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