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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앞에서

입력
2025.03.16 22: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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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차단벽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차단벽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갑작스러운 구속 취소로 국민들은 다시 바빠졌다. 사회단체들은 시국선언을 쏟아내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고 있다. 법원의 결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동시에 앞으로 예정된 사법 일정과 사법 처리에 대한 불안감을 높였다.

그 소식을 듣고 나도 힘이 빠졌다. '탄핵 이후 세상'을 고민하던 순간에 다시 모든 것을 돌려놓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구속되고 기소되는 등 사법절차를 거치는 동안 시민사회는 확실시됐던 윤 대통령 탄핵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개혁 과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이번 광장에서 보았다.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있음에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일터에서 다치고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당해고나 사용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고 저임금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일상에서 성차별과 성폭력 위험에 처해 있는 여성들, 동등한 시민권을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들,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 인간 중심 사회에서 이용과 개발의 대상이 된 동물 등 자연생태계가 있다.

이렇게 소외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광장에 나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외치고 동시에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불합리가 정치나 제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탄핵 이후 세상은 달라야 하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에 산적한 다양한 문제들을 이후 어떻게 개선해낼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며 탄핵 이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닥친 불안감,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이 같은 심층 의제에 대한 논의는 다시 멈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을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 수호라는 구호를 2025년에도 외칠 줄은 몰랐다. 지난해 12월 3일 무너질 뻔한 헌법 질서를 국민들이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지금도 흔들리지 말라고 민주주의를 부여잡고 있다. 광화문 일대에 농성장이 들어서고, 시국선언이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단식도 감행하고 있다.

시민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차례다. 시민들이 긴급 구조한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다시 뿌리 깊게 바로 세움으로써 확실히 마무리해주어야 한다. 시민들의 행진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세상을 향한 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속한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쉬운 문제는 얼른 풀고, 다음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풀고 싶다. 새 세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믿고 싶다.

김소리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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