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13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영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을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의 방한 무산은 한미동맹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핵보유국 발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등 안보 분야에서 '한국 무시' 신호가 끊이지 않던 상황이었는데, 국방장관마저 한국을 찾지 않기로 했다. 미국의 안보 구상에서 한국의 중요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애초 헤그세스 장관은 이달 하순 한국 일본 괌 하와이 등 인도태평양 전략 요충지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장관급 방한으로 주목받았다. 미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관련 방안 등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일정’을 이유로 방한을 연기했다.
외국 장관 방한 무산이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최근의 국내 정치 상황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이후, 한국은 3개월 이상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다. 외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고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나라와 정상외교 혹은 고위급 회담을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조 바이든 정부 시절 한미 국방장관은 정기적으로 혹은 북핵· 미사일 대응 등 안보 이슈가 생기면 대면회담이나 전화통화로 동맹 결속을 과시하곤 했다. 지난해엔 양국 외교·국방장관이 함께 만나는 ‘2+2 회담’이 3년 만에 재개되기도 했다.
트럼프 2기 들어 북미회담 가능성 언급 등 판이 180도 바뀌었다. 현장에서 보는 남북 긴장 강도나 북한의 전략은 정보로만 접하는 것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만큼 헤그세스 장관 방한은 북미대화나 북핵문제와 관련한 우리 입장을 제대로 전달할 기회였다. 대통령 탄핵정국의 정정 불안에도 불구하고 정치 회복력을 보여줄 계기이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 등 최근접 동맹국과의 대결마저 서슴지 않고, 대유럽 정책에서 오히려 러시아 편을 드는 등 국제정치·안보 체제의 새판을 짜려 하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의 방한 무산은 안보 패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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