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벤치마크인 지수 7% 이상 미끄러져
통화 가치도 1998년 외환 위기 시절 수준
대규모 재정 지출 예고에 해외 투자자 불안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증권거래소 전광판에 지수가 6% 하락했다는 표시가 나타나 있다. 자카르타=AP 연합뉴스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 금융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외환시장도 30여 년 전 외환위기 수준으로 흔들리고 있다. 무상급식 등 막대한 재정 지출이 필요한 신임 대통령의 정책으로 인해 국가 신용등급 하향 우려까지 제기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 원인이다.
5년 만에 주식 시장 거래 중단
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포스트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증시는 국가 재정 악화 우려로 연일 급락하고 있다. 지난 18일 증시 벤치마크인 자카르타종합지수는 장중 7.1% 미끄러졌다. 당초 주가가 5% 하락하면서 30분간 서킷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가 발동됐는데, 거래 재개 후 낙폭은 더 확대됐다. 인도네시아에서 증시 폭락으로 거래가 중단된 것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5년 만이다.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증권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주가 지수가 적힌 전광판을 지켜보고 있다. 자카르타=AFP 연합뉴스
채권·외환시장도 위태롭다.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6.75% 수준이었지만 19일 7.15%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달러 대비 루피아 가치는 전 거래일 대비 1% 가까이 하락하며 달러당 1만6,500루피아에 거래됐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달러당 1만6,800루피아까지 떨어졌었는데, 역대 최저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시장이 붕괴하면서 곳곳에서 비명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네시아 최대 데이터센터 운영사 DCI 공동창립자이자 현지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히는 마리나 부디만의 경우 순자산이 사흘 만에 반토막 났다고 전했다. 주가 폭락 전 75억 달러(약 11조 원)에 달했던 부디만의 재산은 19일 기준 36억 달러로 줄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해 2월 14일 보르고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보고르=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상급식 탓 인프라 사업 ‘스톱’
인도네시아 금융시장 불안 뒤에는 정책 불확실성이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조코 위도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달리 지난해 10월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정부 지출을 대폭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급식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초부터 전국 초·중·고교생과 영유아, 임산부에게 하루 한 끼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올 초 57만 명을 시작으로 2029년에는 약 9,000만 명으로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재무부는 무상급식 예산 확보를 위해 중앙·지방 정부 예산에서 306조7,000억 루피아(약 27조5,000억 원) 규모 재정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이로 인해 인프라 사업을 비롯한 각종 정부 사업이 줄줄이 멈춰 섰다.

인도네시아에서 무상급식이 시작된 1월 6일 서자바주 데폭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데폭=AP 연합뉴스
여기에 정부가 연간 주택 300만 채를 공급하겠다고 나서면서 국영 기업을 통해 채권을 대거 발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재정 적자 가능성에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인도네시아 국가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거세지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불안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금융시장이 휘청거린 셈이다.
당국은 외환 시장에 개입하며 진화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19일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7일물 역환매채권(RRP) 금리를 5.75%로 동결했다. 경기 부양과 증시 안정보다 환율 방어에 더 중점을 두기 위해 금리를 동결한 것으로 해석된다. 급한 불은 껐지만 당분간 전망은 밝지 않다. 아베 료타 SMBC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인도네시아 정치 상황 요인으로 현지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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